[소설 입선작] 바다가 부른다
바다가 부른다
작품 감상 링크: https://blog.naver.com/smuhakbo/222592459853
나는 사주에 물이 없이 태어났다. 나를 처음 본 외할머니는 갓난쟁이인 나를 안고 딱 한 마디 하셨다고 한다. 얘는 평생 바다에 살아야겠다. 그 때 엄마는 속으로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비웃었더란다. 딸은 서울에 보내겠다는 원대한 꿈이 있으셨다고.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외할머니는 돌아가셨다. 외할머니와의 기억이 많지는 않지만,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바다에 유골을 뿌리러 나간 날은 똑똑히 기억한다. 평소 엄마가 치마를 입히려 하면 울며불며 거부하던 나였지만, 그 날은 어딘지 가라앉은 집안 분위기에 아무 말 없이 검은 원피스와 구두를 신었다.
촌스러운 유람선을 타고 바다로 나가는 길은 하나도 신나지 않았다. 왜 바다에 가냐는 물음에 엄마는 외할머니를 바다에 보내드리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외할머니는 분명 하늘나라에 가셨다 했는데 오늘은 바다에 보내드린다는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바다장의 모습은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바다에 유골함과 꽃을 떨어뜨렸고, 사람들이 울었고, 바다가 어지럽게 흔들리고 있었다. 어른들이 우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내가 훌쩍훌쩍 울기 시작하자 배가 한 번 크게 흔들렸다.
왜 울어?
누군가가 물어왔다. 나는 소매로 눈가를 닦으며 대답했다. 사람들이 다 울잖아.
사람들이 울면 너도 울어야 해?
정말 순수한 말투였다. 목소리라기보다는 머릿속으로 직접 전해져오는 어떠한 사념에 가까웠다. 고개를 든 나는 발화자를 찾으려 배 바깥을 둘러보았지만 넓은 바다밖에 보이지 않았다. 습한 바닷바람에 멀미가 났다.
“누구야?”
내가 물었다. 대답은 배 바깥에서 들려왔다.
나는 나야
우리는 우리야
여러 목소리가 뒤섞여 들려왔다. 나는 내 키보다 큰 난간을 붙들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배에 부딪혀 하얗게 갈라지는 바닷물이 보였고, 바닷물이 반갑다는 듯 나를 향해 웃었다.
바다가 나를 향해 웃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어린 아이에겐 어떤 마법 같은 일도 이상하지 않았다.
우리 말이 들려?
“응. 들려.”
내가 코를 훌쩍이며 대답하자 바다는 기쁘다는 듯 한 번 크게 일렁였다.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내게 말을 건네는 바다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 거대한 존재와 내가 말을 할 수 있다는 게 나는 기뻤다. 울지 마. 어른스러운 목소리로 바다가 말했고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가 우는 배에서 홀로 위로를 받은 날이어서, 그 날만은 잊을 수가 없다. 바다와 처음 대화한 그 날.
그 날부터 원래는 들리지 않던 말소리가 시시때때로 바닷가에서 들려왔다. 주로 바다에서 일어나는 아주 사소한 일에 대한 말이었다. 나는 그 사소한 말에 대답을 해주기 위해 매일같이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나섰다. 집 근처 포구부터 거리가 좀 있는 해수욕장까지.
“바다에 뭐 볼 게 그렇게 많다고 매일같이 가자 그래.”
항상 나를 따라 나온 엄마의 푸념이었다. 엄마, 바다가 말을 한단 말이야. 내가 말하면 엄마는 ‘그래, 그렇겠지’하고 대충 대꾸해줬다. 어린 아이가 하는 평범한 상상 정도로 치부하신 모양이었다.
좀 더 나이가 들어 동생도 유치원생이 됐을 땐 동생에게도 바다와 대화를 시키려 해봤다. 동생은 내가 바다랑 말을 할 수 있다는 말을 진심으로 부러워하는 눈치였는데, 그래서인지 늘 자기도 말을 할 수 있는 척했다.
“방금 바다가 뭐라 했어?”
“응? 배고프대.”
“거짓말 하지 마!”
내가 그렇게 말하면 동생은 얼굴이 붉어져선 빼액 울어댔다. 나는 동생이 바다랑 말을 못 하는 게 답답해서 지적을 했을 뿐인데, 동생은 그걸 굉장히 자존심 상해 했다. 결국 엄마는 동생 앞에서는 바다랑 놀지 말라며 으름장을 놓으셨고, 나는 혼자 바다를 보게 됐다.
“왜 내 동생은 너랑 말 못해?”
몰라
너는 할 수 있잖아
“나도 몰라. 나는 그냥 들리는데, 해인이는 안 들린대.”
바다는 딱히 내 동생에겐 관심이 없었다. 내 동생뿐만 아니라 대체로 모든 인간에게 그랬다. 바다가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내가 유일했다.
돌고래 떼가 지나갔어
“진짜? 다시 불러오면 안 돼?”
걔넨 여기 없어
“왜. 너는 부를 수 있는 거 아니야?”
내 말에 바다가 키득키득 웃고 파도가 파르르 떨렸다.
여기가 아니라 다른 곳을 지나갔어
바다의 말은 대체로 내 또래 아이가 말하는 것처럼 단순했지만 종종 알아듣기 어려웠다. 나는 꽤 오랜 시간 바다와 대화한 후에야 그 이유를 알아냈는데, 바로 바다는 독립적인 개체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대체 뭐로 이루어진 건지는 지금도 모르겠지만, 바다는 늘 여러 목소리로 말했고 종종 자신을 ‘우리’라고 칭했다. 그렇기 때문에 바다가 내게 전해주는 소식은 꼭 우리 동네 바다의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바다가 독립된 개체가 아니라는 점은 또 다른 특징이자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성격이 매일매일 달랐다는 점이다. 어떤 날 바다는 하루 종일 살갑게 굴었고, 어떤 날은 네 살배기 아이처럼 저녁 늦게까지 자기랑 놀자고 떼를 썼다. 그러다가도 갑자기 어른스러운 목소리로 나를 달래주기도 하고, 돌변해서 화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어렸을 땐 그게 이상하거나 무섭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내가 일곱 살 땐가, 모래놀이를 하고 있던 내게 바다가 갑자기 분노하며 달려든 적이 있었다. 성난 파도가 내가 쌓은 모래성을 무너뜨리고 다시 수그러들었다. 내가 짜증스레 몸을 일으키자 바다는 토라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모두 우리를 싫어해
“누가?”
우리 말을 듣는 건 너밖에 없어
이번엔 조금 화가 난 어른 목소리였다. 나는 내 모래성을 무너뜨린 바다 때문에 집에 돌아가고 싶어진 참이었다.
“집에 갈래.”
나랑 있자
우리랑 있자
가지 마
바다가 어린아이 목소리로 나를 붙잡았다. 파도가 내 발목을 한 번씩 치고 다시 미끄러져 내려갔지만, 당연히 나를 붙들 순 없었다. 나는 바닥에 있던 모래 삽을 주워서 돌아섰다. 바다는 뒤에서 ‘우우우’하고 괴로워하는 소리를 냈지만 더는 나를 부르지 않았다.
그 날 아빠는 집에 들어오지 않으셨다. 엄마는 옆 지역 어선이 전복됐다는 뉴스를 심각한 얼굴로 바라보고 계셨다. 아빠는 사람들 구하러 갔어. 그 말에 나는 창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미 해가 사라진 바깥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바다만이 혼자 울부짖고 있을 뿐이었고, 그건 일곱 살 어린 아이가 감당할 수 없는 절규였다. 그 날 나는 귀를 틀어막고 엄마 품에 안겨 울다 잠들었다.
아마 그 때가 처음으로 내가 바다를 무섭다고 생각했던 날일 것이다. 나는 바다에서 사람이 죽기도 한다는 걸 그 날 처음으로 인지했으니까. 내게 제멋대로 구는 바다는 그래도 내 친구였지만, 사람을 죽이는 바다는 아주 낯선 존재로 느껴졌다.
하지만 직접 느끼지 못하는 사실은 결국 뇌리에서 멀어지기 마련이다. 그 다음 날 바다는 내게 한 없이 다정했고, 내가 해변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수영을 하게 도와줬다. 바다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발이 닿지 않는 곳까지 나를 끌어줬고, 돗자리에서 깜박 졸던 엄마가 나를 보고 비명을 지르고서야 나를 도로 해변으로 돌려보냈다. 얼굴에 물 한 방울 묻지 않고 돌아온 나를 보고 엄마는 혼비백산한 얼굴로 주저앉으셨지만, 어렸던 나는 의기양양한 기분이 들었다.
바다는 나에겐 특별해. 나는 바다에 절대 빠지지 않고 바다는 나를 좋아해. 나는 특별해……. 그런 생각이었던 것 같다. 누군가에겐 위험할 저 바다가, 나에게만은 절대로 안전하다는 자신만만한 생각.
그렇게 나는 초등학생이 되었다. 그 때쯤부터는 바다와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정말 나밖에 없다는 걸 확실히 알아서, 다른 사람이 있을 때는 바다에게 대답하지 않았다. 혼잣말을 하는 아이로 찍히고 싶지 않아서였다. 바다는 당연히 서운해 했고 화도 냈지만, 혼자 있을 때는 내가 대답을 잘 해줬기 때문인지 어느 순간부터는 불만을 갖지 않았다.
바다는 어떻게 말을 하는 걸까? 바다의 말은 확실히 음성(音聲)이라 보기는 힘들었다. 발음 기관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닌, 어떠한 파동이 내 온몸으로 직접 전해지며 언어로 바뀌는 느낌이었다. 그렇다면 바다는 왜 그런 식으로 의사를 전달하고, 왜 그걸 나만 알아들을 수 있을까.
어떻게 이런 방식의 소통이 가능한 걸까. 거기에 생각이 미칠 즈음 나는 열한 살이었다. 여전히 바다와는 친구였지만, 나는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친구에 대한 생각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었다. 제멋대로 구는 바다에게 마냥 좋은 감정만 남아있지도 않았다. 여전히 나는 특별하다는 믿음과 거기서 오는 바다에 대한 신뢰가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바다의 정체에 대한 의구심도 품은 채였다.
“너는 몇 명이야?”
바다가 유난히 기분이 좋아보이던 날. 평소처럼 포구에 들른 내가 물었다. 돌을 검게 적시고 있던 바다는 내 질문에 킥킥 웃었다.
우리는
아주
많지
“그러니까 얼마나?”
모르겠어
셀 수 없어
세는 법을 몰라
서로 다른 목소리들이 동시에 대답했다. 어른 목소리부터 아이 목소리까지. 나는 또 다른 대답을 기다렸지만 다른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내 질문에 흥미가 별로 없는 모양이었다.
“너는 어떻게 말해?”
몰라
바다는 대충 대답하곤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쪼그려 앉아있던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제야 바다는 아쉽다는 티를 냈다. 벌써 가는 거냐고 묻는 바다에게 나는 ‘숙제해야 돼’라고 대꾸했다.
횡단보도를 건너 집 쪽으로 걷던 나는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날이 유독 좋아서 바다가 새파랗게 빛나고 있었다. 새파란 물결들의 흐름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나는 가방끈을 꽉 쥐었다. 저 광활한 바다에, 수 없이 많은 인격들이 녹아있다. 어디서 왔고 언제부터 존재했는지도 모를,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수한 자아들이 뒤섞여 있다. 그리고 그들의 유일한 대화 상대는 나다.
붉은 색 보도블록만 골라 걸으며 지나간 기억들을 생각했다. 내가 바다랑 말을 할 수 있다고 할 때마다 그만 좀 우기라며 다그치던 엄마의 어딘지 걱정스런 눈빛. 내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던 동생의 표정. 쟤는 혼잣말을 한다며 머리에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리던 또래들. 그리고 내가 그런 일로 속상해하면 울지 말라고 서툴게 위로를 해오던 바다…….
변덕스럽고 제멋대로지만 늘 나를 좋아해주는 친구.
“아.”
갑자기 지겨워졌다. 바다의 말 때문에 사람들이 하는 말을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하는 일들도, 집에 좀 제때 오라고 엄마에게 혼나는 것도, 자기를 매일 보러 오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바다를 달래주는 것도.
그리고 그 다음 해에 제일 친한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선박 사고였다. 현장에 갔다가 돌아온 아빠는 내 어깨를 짚으며 말했다. 친구한테 잘해 줘. 그 말에 나는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폭우로 구조 작업이 난항을 겪었고, 바다도 몰아치는 비에 화가 난 상태였다. 사실 아빠가 오기 전부터 나는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절대 그 배를 건질 수 없으리란 사실을.
일주일 만에 등교한 친구는 혼이 쏙 빠진 얼굴이었다. 반 친구들이 함부로 서툰 위로를 건넬 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멍한 얼굴로 앉아 있는 친구는 하필 창가 자리였고, 창 밖에선 바다가 뭐에 성이 났는지 혼자 뭔가 구시렁대고 있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바다와 그를 배경으로 앉아 있는 친구의 옆얼굴이 괴리감이 너무 컸다.
그 친구와 함께 하교하는 길. 학교에서 한 마디도 제대로 나누지 않았기 때문에 입을 떼기가 더 두려웠다. 실내화 가방을 붕붕 흔드는 친구의 팔엔 힘이 없었다. 평소 다니던 길로 나가려는 친구의 손목을 붙잡았다.
“오늘은 다른 길로 갈래?”
“왜?”
그렇게 묻는 친구에게 대답하는 대신 나는 바다를 살짝 곁눈질했다. 우리가 집에 가는 길은 연안을 따라 일자로 나 있는 길이었다. 내가 바다를 의식한다는 걸 안 친구가 피식 웃었다.
“나 괜찮아. 진짜로.”
“그래도……. 바다가 그랬잖아.”
내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어째선지 친구 아버지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내 친구가 죽였다는 생각이 떨쳐지지 않았다. 바다는 사람도 생물도 아니지만 분명 내 친군데. 나에게는 안전한 친구가 누군가에게는 살인마라는 사실이 확 와 닿고 말았다.
“그치.”
친구가 바다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맹한 눈동자에 바다가 비쳤다.
“하지만 바다는 바다일 뿐이니까.”
그렇게 대답한 친구는 늘 가던 길로 걷기 시작했다. 나는 그 뒤에 한참을 서 있다가 친구의 부름에 겨우 발을 움직였다.
바다는 바다일 뿐이구나.
사람을 죽이고 집어 삼킨 괴물인데도, 친구에게 바다는 그저 바다일 뿐이다. 그 사고과정이 순간 이해가지 않아 나는 멈춰있었다.
친구 뒤를 쫓아 걸으면서야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나에게 바다는 살아있는 존재다. 대화를 할 수 있고 나를 기억하는, 심지어는 친구까지 될 수 있는 존재. 그렇기에 나는 바다가 누군가를 죽였다는 사실이 겁이 났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바다는 그저 바다일 뿐이다. 사고가 날 수도 있지만 결국엔 그냥 바다인 것이다. 나에게만 바다가 가지는 의미가 달랐다. 그 순간 바다가 해맑게 웃었다.
당분간은 비가 안 올 것 같아
좋아
비는 귀찮아
“조용히 해…….”
내가 작게 속삭였다. 친구는 듣지 못했지만 바다는 들었는지 순간 파도의 움직임이 둔해졌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바다가 의아하다는 목소리로 ‘왜?’하고 물었지만 나는 고개를 휘휘 저은 후 말없이 걸었다. 친구 앞에서 바다에게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친구가 집에 들어간 후 나는 온 길을 되돌아갔다. 바다와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었던 포구까지 숨이 차게 뛰었다. 내가 다시 돌아오자 바다는 기쁘게 나를 맞아주었다. 하지만 나는 바다가 전혀 반갑지 않았다.
“왜 그랬어?”
뭐가?
왜?
“왜 내 친구 아빠를 죽였어?”
격양된 내 목소리에 바다는 잠시 말없이 출렁였다. 바닷바람이 머리를 마구 헤집고, 귓가로 바람소리와 바다소리가 매섭게 뒤엉켜왔다.
“왜 사람을 죽였어?”
죽이지 않았어
바다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거짓말.”
나는 그냥 같이 있고 싶어서
혼자는 외로우니까
같이 있고 싶어서
바다가 서글픈 목소리로 느릿느릿 말을 이었다.
그래서 품에 안았을 뿐인데……
그 말에 나는 털썩 주저앉았다. 시멘트 바닥을 짚은 손이 따가웠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나는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었다. 손이 덜덜 떨렸다.
“너는 배를 안으면 안 돼.”
왜?
“그럼 배가 물에 빠진단 말이야.”
내 말에 바다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딴청을 피우기 시작했다. 이해하기 싫은 걸지도 몰랐다. 어른스럽던 목소리는 ‘아아아아’하고 내게서 멀어져가고, 어딘지 화가 난 목소리가 대신 대답을 해왔다.
같이 있고 싶어서 그런 건데 왜 그러면 안 돼?
그 말에 어릴 적부터 매일 들었던 바다의 말이 떠올랐다. 같이 있자. 같이 놀자. 가지 마, 떠나지 마. 정말 순수하게 나와 함께 있고 싶어 하던 그 말들이, 어느 때는 반갑고 마음이 따뜻해지기까지 하던 그 말들이 갑자기 겁이 나기 시작했다.
“너는 그럼 나랑도 같이 있고 싶어?”
그 말에 바다는 빙그레 웃으며 즉답했다.
당연하지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집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바다의 부름은 더는 들리지 않았다. 실내화 가방을 포구에 놓고 왔다는 걸 집에 와서야 알았지만 다시 돌아갈 수 없었다. 나는 방에 들어가 귀를 틀어막고 한참을 울다가 기절하듯 잠들었다. 오랜 시간 믿어온 친구를 더는 믿을 수 없었다.
그게 내가 바다와 대화한 마지막 날이었다.
열두 살, 바다와의 마지막 대화 이후로도 바다는 계속 시끄러웠다. 처음 몇 달 정도는 계속 내게 말을 걸었지만 내가 무시하자 그 빈도도 점점 줄어들었다. 어릴 적부터 꾸준히 들어온 말소리를 무시하는 건 쉽지 않았지만 아주 어렵지도 않았다. 바다에게도 나와 대화를 한 시간보다 자기 혼자 살아 온 시간이 몇 배, 아니 몇 만 배, 몇 억 배는 길 테다. 그래서인지 바다도 생각보다는 쉽게 나를 포기했다. 한탄하듯이 내가 사라졌다고 내뱉는 게 전부였다.
가끔 바다의 말소리는 너무도 처절해서, 나도 모르게 대답할 뻔 한 적도 여럿 된다. 그런 날엔 먼 바다에서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가 눈에 띌 만큼 풍랑이 강했다.
왜 우리 말을 못 듣는 거야?
우리에겐 너 뿐인데
그런 말들을 무시할 때면 나도 마음이 안 좋았다. 왜 자기를 혼자 내버려 두냐고 우는 어린 아이를 눈앞에서 내치는 기분.
바다는 바람을 정말 싫어했다. 그리고 오늘처럼 풍랑 경보가 내릴 정도로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은, 바다는 내내 끔찍한 소리를 내며 괴로워했다. 정말로 바람 때문에 바다가 고통을 느끼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바다 자신에게도 높은 파도가 치는 일은 유쾌한 일이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오늘처럼 바람이 세 파도가 5미터를 훌쩍 넘기는 날엔 바다는 화가 나 있었다.
그리고, 화가 난 바다는 아빠가 탄 배를 집어 삼키려 하고 있었다.
당연히 부두 가까이엔 설 수 없었다. 사람들이 바다 근처 건물에 사고 가족 대기실을 마련해줬지만 엄마도 나도 그 안에선 초조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멀리 바다에 떠 있는 구조정들의 빛이 더 뿌옇게 보였다. 파도가 세짐에 따라 빛이 보이다가 보이지 않다가를 반복했다.
너희는 들어가 있어.
엄마가 말했지만 나도 동생도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엄마는 울지 않았지만 옆에 선 동생은 계속 소리를 내며 울었다.
바다도 울고 있다. 제각기 다른 속도로 파도가 몸을 일으켰다가 쓰러질 때마다 탄식 소리가 들려왔다.
외로워
무서워
화나
바다가 절규하고 있다. 모든 걸 삼키려 하고 있다. 우리 아빠를 구하기 위해 이 날씨에도 바다에 나가야 했던 구조정도 삼켜버릴 것이다. 그리고 아빠가 타고 있던 배도, 우리 아빠도.
네가 뭐가 그렇게 무섭고 화가 나냐고 쏘아붙이고 싶었다. 내가 더 괴롭고 화나는데. 해경 직원 한 명이 엄마에게 와서 무어라 말했지만 내 귀엔 들리지 않았다. 바다의 목소리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머릿속 구석구석을 괴롭다는 비명으로 때려대는 기분이었다. 나는 머리를 손으로 감싼 채 주르르 주저앉았다. 동생이 아무 말 없이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왔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바다의 절규하는 목소리는 여전히 귓바퀴에 부딪히고 있는데, 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게 나밖에 없다니. 저 절규를 달랠 수 있는 게 이 세상에 나뿐이라니.
한낱 인간이 어떻게 바다를 달랠 수 있을까. 그런 게 됐으면 그 많은 사람이 죽을 이유도 없었을 텐데. 머리가 아팠다. 바람을 너무 많이 맞은 피부엔 감각이 없다. 한낱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하지만.
하지만 내가 그냥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면.
그리고 그 때 엄마가 쓰러졌다. 갑자기 힘없이 픽 쓰러지는 엄마를 본 동생이 비명을 질렀고, 멀리 서있던 해경들이 달려왔다. 엄마는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고, 그런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뒷걸음질을 쳤다. 동생이 뭐하냐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지만, 나는 그런 동생과 엄마를 두고 등을 돌려 달릴 수밖에 없었다. 언니 어디 가! 동생이 당황해서 소리쳤지만, 지금은 동생보다 중요한 대화 상대가 있었다.
어릴 적 매일 같이 가던 포구까지 십여 분 정도 만에 달려 도착했다. 바람이 미친 듯이 불어서 금방이라도 몸이 넘어갈 것 같았다. 우비를 썼지만 바람이 너무 세서 별 소용이 없었다. 앞머리는 비에 젖어 이마에 축축하게 달라붙었고 안경은 빗물이 너무 많이 묻어 벗은 지 오래였다. 파도는 한 번씩 달려들다가 나를 알아보기라도 한 듯 다시 절벽 아래로 사라졌다. 그 모습에 더 화가 났다. 파도가 부서지며 울음소리를 냈다.
나를 두고 가버렸어
내가 초등학생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말투였다. 바다는 여전히 어리고 순수했고,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는 데 조금의 고민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의 높은 파도였다.
나를 두고 가버렸어
나에겐 너 뿐인데
우리에겐 너 뿐인데
왜일까. 바다는 왜 아직도 나를 기억하고 찾는 걸까. 바다가 살아온 억겁의 시간 속 나는 찰나도 되지 못할 텐데. 그 찰나인 나를 잊지 않고 바다는…….
우리에게 돌아와
나한테 돌아와
계속 나를 부르고 있다.
우리는 네가 필요해
바다가 나를 부르고 있다. 몇 년 전 내가 버린, 나의 가장 특별하고 아름다웠던 친구가 나를 부르고 있다. 갑자기 몰려오는 어떤 무거운 감정에 숨이 막혀서, 나는 양손으로 잠시 입가를 가리고 눈을 감았다. 나는 더는 저 애달픈 부름을 무시할 수 없다. 소름 돋게 무섭지만 가장 특별했던 친구.
처절한 비명을 지르는 검은 바다를 바라보다가, 심호흡과 함께 말을 뱉었다. 크게 말하려 했지만 떨리는 숨과 함께 새된 목소리가 나왔다.
“왜 사람들을 데려갔어?”
내 말에 비명을 지르며 달려오던 파도가 우뚝 멈춰 섰다. 공중에 멈춰선 파도는 비바람에 흩어지며 내 얼굴에 부딪혀왔고 곧바로 다음 파도가 달려들었다.
너
역시 우리 말을
듣고 있었구나
소름 돋을 정도로 순식간에 차분해진 목소리였다. 조금 전까지 외롭다고 울부짖던 목소리는 사라지고 없었다. 파도가 나를 중심으로 갈라지며 도로에 쏟아졌다. 차가운 바닷물이 발목까지 차올랐다가 사라졌다.
“왜 사람들을 삼켰냐고.”
네가 우릴 버렸잖아
바다가 날카롭게 소리 질렀다.
수없이 여러 번 말을 걸었는데 전부 무시했잖아
다 들리는데 무시한 거였어
나는 한없이 외로웠는데!
바다가 소리칠 때마다 소름이 돋았다. 바다의 감정이 전부 나에게 향한 건 처음이었고, 거대한 무생물의 감정은 인간 한 명이 감당하기엔 너무도 깊었다. 바다가 언제 만들어졌는지 나는 모른다. 인류가 지구에 등장하기 이전부터 끝없는 시간을 살아온 존재의 외로움은 내가 가늠할 수 없는 무게였다.
“그래서 사람들을 데려간 거야? 외로워서 자꾸 사람들을 삼키는 거야?”
내 말에 바다가 킬킬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파도가 부르르 떨리는 게 눈에 보였다.
내가 사람들을 삼키면 그들은 모두 외로워해
나랑 같이 있는데도 외로워한다고
그러다 죽어버려
“너는 혼자가 아니잖아. 너는 ‘너희’잖아. 그런데도 외로워?”
그런 게 다 무슨 상관이야?
우리는 우리지만
다 같은 우리인 걸
다른 존재가 조금도 없는 우리인 걸
뭐가 모여서 바다를 이루고 바다의 의식을 만든 걸까. 어째서 집단적인 의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외로워하는 걸까. 저렇게나 긴 시간을 살아왔으면서.
멀리 깜박거리는 구조정을 보았다. 불빛은 파도가 거세지며 위아래로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아빠가 탄 배는 지금쯤 어떻게 됐을지 감도 오지 않았다. 다들 아직 살아있을까.
우리 밖엔 다른 것들이 더 많은데 아무도 나랑 얘기하지 않아
심지어는 너조차도 우릴 떠났어
유일하게 내 말을 듣던 네가 말이야
힐난하는 어조를 듣던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누군가에게 바다는 아름다운 곳이었지만, 겉보기엔 푸르고 평화로워 보이는 그 아래엔 눈을 멀게 하는 짙은 어둠이 있고 공허한 절규가 있다.
그리고 그 절규를 나만 들을 수 있다. 바다는 생명의 보고지만 그 자체가 생명은 아니다. 대체 나는 무엇의 말을 듣고 있는 걸까? 그 생각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바다는 신이 아니고 나는 인간이다. 바다의 말을 듣는다는 추상적인 이야기가 나의 일이 아니었으면 했다.
“나는 네가 무서웠어.”
바다는 내 말에 잠시 조용해졌다. 여전히 거칠게 파도가 밀려들고 있었지만, 파도의 끝은 결국 내게 닿지 못하고 부서졌다.
“나에겐 너무도 소중한 친구인데, 누군가에겐 아니라는 게. 나에겐 친절하지만 누군가에겐 난폭하다는 게, 누군가에겐 살인자라는 게.”
그게 너무 무서웠어. 바다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바다가 무섭다. 우리 아빠와 아빠의 동료들을 집어삼키고 아래로 끌고 가려는 바다가 무섭다. 세상이 이렇게나 발전했어도 뒤집어진 배 하나 꺼낼 수 없다. 인류가 달에 가고 태양계 너머로 우주선을 보내는 시대지만 바다에 빠진 배 하나 꺼낼 수 없다. 그런 거대한 존재를 어떻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저 존재가 외로워서 이런 짓을 벌이는 거라면, 적어도 나는 그걸 막을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두려운 존재지만 나만이 저 분노를 달랠 수 있었다. 눈앞에 있지만 그 무엇보다도 깊고 두려운 존재. 그 존재의 말을 나만이 들을 수 있다.
바다의 부름에 나만이 응할 수 있다.
“하지만 나도 네가 그리운 순간이 분명 있었어. 네가 무섭고 싫었지만 네가 소중한 순간도 분명 있었어.”
내가 천천히 말을 이었고, 바다는 조용히 내 목소리를 들었다. 잔뜩 화가 나선, 파도에 분노와 애증과 그리움을 동시에 담은 채.
“내가 너를 외롭지 않게 해주면 아빠를 돌려줄 거야?”
내 물음에 파도가 높게 일었다. 아무 대답 없이 파도는 공중에 잠시 머무르다가 갈라졌다. 나는 도로 끝으로 한 걸음 내딛으며 다시 물었다.
“내가 네 말을 다시는 무시하지 않는다 하면, 앞으론 사람들을 안 데려갈 거야?”
네 말을 어떻게 믿어?
내 말에 바다가 고개를 들 듯 파도를 한 번 크게 일렁였다. 반항적인 어조였지만 나는 그 파도를 본 순간 다짐할 수밖에 없었다. 일말의 기대감을 품은 그 몸짓을 본 이상, 더는 바다를 무시해선 안 됐다. 그 어리고 순수한 기대감을 무시해선 안 됐고, 결심해야 했다. 나는 이제부터 바다의 말을 듣겠노라고.
이미 우릴 한 번 버렸으면서
우린 너를 그렇게 오랫동안 그리워했는데
들은 체도 안했으면서
“다시는 안 그럴게. 그러니까 제발.”
우리 아빠 돌려줘. 오른쪽에서 불빛이 달려들었다. 경적과 함께 타이어가 도로에 긁히는 소리가 날카롭게 귀를 찔러오고 피할 새도 없이 나는 자동차 전조등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찰나의 순간에 파도가 가드레일을 넘어와 나와 자동차를 뒤덮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거센 파도에 휩쓸린 자동차는 밀려나며 뒤집혔고, 나는 자동차 반대방향에 있는 가드레일로 끌려가 부딪혔다. 내가 부딪히자마자 파도는 아래로 사라졌고 나는 뒤집힌 자동차를 보며 기침을 했다. 안경도 없는 탓에 눈앞이 흐렸다.
정말 나를 다신 안 떠나는 거야?
바다가 조용히 물어왔고 나는 물을 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럴게.
정말 내게 돌아와 주는 거야?
“그래.”
이제 내 말 무시 안 할 거야?
“그래. 너희 말 무시 안 할 거야.”
다시 내 말에 대답해주는 거야?
“그래.”
나는 네가 없어서 너무 외로웠어.
고개를 들고 새까만 바다를 쳐다보았다. 여전히 비가 쏟아지고 있지만 파도가 조금씩 잔잔해지고 있었다. 어린아이가 한참을 울다가 지쳐서 울음을 그치는 것처럼, 천천히 느릿느릿 바다는 힘을 빼고 있었다.
멀리 구조정의 불빛이 넘실거리며 점점 육지로 가까워지는 게 보였다. 바다가 바람의 흐름과는 반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배를 아예 해안가로 보내려는 모양이었다. 아빠가 아직 살아있을까?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바다가 정말 나를 돕기로 다짐했다면 분명 아빠를 돌려줄 것이었다. 바다는 기쁨의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고, 나는 그대로 기절하고 말았다.
기절해 있는 와중에도 바다가 내게 건네는 말이 간간이 들려왔다. 사람들이 네 아빠를 배에서 꺼냈어.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할 수 없었지만 나는 그 말에 안심한 채 눈을 감았다. 바다의 기분 좋은 노랫소리가 빗소리와 파도 소리 사이로 멀어져갔다.
도현정(컴퓨터과학과)
졸업을 앞두고 마음이 심란하던 중 이렇게 입선이란 결과를 받으니 기쁩니다.
어릴 때부터 바다 가까이 살며 해상 사고 소식을 자주 접했고 그런 제게 바다는 아름답지만 무서운 곳이었습니다. 지금도 바람이 센 날 파도를 보면 깜짝깜짝 놀라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바다가 점점 좋아지기 시작해서 바다에 대해 어설프게나마 써보고 싶었어요.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