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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제 741 호 텍스트 힙_ 독서, 트렌드가 되다

  • 작성일 2024-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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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375
이은탁

  최근 들어 SNS에서 책 글귀를 찍어올리거나 책을 쌓아 올린 사진을 인증하는 게시물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텍스트(text, 글)를 읽는 것이 힙(hip, 세련되다, 멋지다) 하다고 여기는 이른바 ‘텍스트힙’의 유행이다. OTT의 발달로 이미지와 영상에 익숙해진 지금, 문자 기반 콘텐츠의 유행은 눈여겨볼 만하다. 


독서가 유행이라고?

  ‘텍스트힙’ 유행이 단시간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초기에는 소수의 젊은 세대만이 상대적으로 희소해진 텍스트를 즐겼으나, 올해 초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Reading is Sexy (독서는 섹시해)’란 제목의 기사를 보도하며 본격적으로 관심이 일었고 점차 퍼져나가고 있다. 지난  6월 코엑스에서 개최된 국내 최대 규모 도서 축제 ‘2024 서울국제도서전’은 약 15만 명이라는 역대 최대 인파가 다녀갔다. 이에 더해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독서 열풍 확산에 기여 중이다. 

  한강 작가가 한국 작가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다음 날인 10월 11일, 책을 사기 위해 서점 앞에 줄을 서는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한강 작가의 책들은 며칠 만에 품절됐으며, 이 흐름을 타고 국내 도서의 판매도 급상승했다. 온라인 서점 예스24에 의하면 지난 10월 10일부터 16일까지 한강 작가의 도서를 제외한 ‘국내 도서 전체 판매량’이 전년 대비 7% 증가했다. CJ대한통운은 지난 10월 한 달간 배송한 도서 물량(박스 기준)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7.3% 증가했다고 밝혔다. 

  국내 도서 중에서도 특히 시집의 인기가 많다. 교보문고에 의하면 올해 6월까지 전체 시집 판매 중 20대가 26.5%, 30대가 20.2%로 많다. 예스24는 10대 독자에게 팔린 시집 판매량이 지난해보다 124.1% 증가했다고 밝혔다. 박하나 예스24 마케팅본부장은 “굳이 따지면 시는 ‘숏폼’이다. 숏폼에 익숙한 10대에게 시의 짧고 감각적인 언어가 색다른 감성으로 와닿으면서 인기가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2024 서울 국제 도서전 (사진: 노컷뉴스 https://www.nocutnews.co.kr/news/6207731 )


그저 보여주기식일까

텍스트힙 열풍은 자극적인 영상 콘텐츠를 피해 아날로그 감성으로 책을 소비하려는 심리, 자기 정체성을 표현하려는 욕구 등이 작용한 결과다.태어날 때부터 미디어에 둘러싸여 자라온 젊은 세대가 이로부터 잠시 벗어나 자신만의 고요한 시간을 갖고자 하는 것이다.   SNS에 책이나 독서하는 모습을 올리며 지적인 이미지를 드러내려는 욕구도 텍스트힙 열풍에 한몫했다. 독립서점과 북카페는 SNS에서 ‘감성 핫플’로 떠오르며 인기 장소가 되었다. 국내의 경우 온라인 독서 플랫폼도 성장했다. 그믐, 독파, 플라이북 등이 대표적이다.

  더 나아가 독서를 통해 사회적 관계를 맺고자 하는 이들도 있는데, 북토크 행사나 온라인 독서 모임이 증가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단순히 책을 읽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책에 대해 이야기하며 새로운 인맥을 쌓고 취향을 공유한다.

  이 유행을 과시와 허세로 여기며 희화화하는 이들도 있다. 책을 완독하기보다는 소비 자체에 집중하는 ‘과시용 독서’라는 것이다. 최근 쿠팡플레이 코미디쇼 ‘SNL 코리아’에서는 젊은 층이 SNS에 책을 사진으로 찍어 올리거나 독서 모임을 하는 장면 모습이 표현됐는데, 이때 참석자들이 “‘채식주의자’를 읽으면서 적어도 육식주의자는 아니겠구나”, “여성이신데 우먼 부커상이 아니라 맨 부커상을 받았다는 점에서 위대하신 것 같아요” 등의 대사를 하며 풍자했다. 


▲SNL 코리아 풍자 장면 (사진: 쿠팡플레이 https://www.coupangplay.com )

  반면 출판업계는 보여주기식 독서도 환영하는 입장이다. 책의 구매만으로도 출판사에는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일부 출판사들은 ‘과시용 독서를 위한 리스트’라며 두꺼운 책 혹은 쉽게 읽어내기 어려운 주제의 책들을 추천했다. 시류에 맞는 재치 있는 홍보에 젊은 세대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과시용 도서 추천리스트 (사진: 책장속북스 https://blog.naver.com/chaeg_jang/223647615450 )

   낮은 독서율로 문해력을 걱정해오던 분위기의 사회에서, 독서에 발을 들이는 행위를 과시나 허세라고 깎아내리는 건 모순적이다. 독서의 시작이 지적 허영이었다 할지라도, 멀리하던 책을 가까이에 두는 것에서부터 분명 의미는 있다. 독서는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정체성과 취향을 표현하는 중요한 방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에 ‘텍스트힙’은 독서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이를 통해 사람들 간의 또 다른 소통의 장을 만들어낼 것이다. 더욱 많은 이들이 책과 가까워져독서 열풍이 지속되길 바라본다. 


이은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