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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제 723 호 [책으로 세상 읽기] 우리가 잊어선 안 되는 것들에 대하여, 책 <작별하지 않는다> ​

  • 작성일 2023-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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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6501
김상범

[책으로 세상 읽기] 우리가 잊어선 안 되는 것들에 대하여, 책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 문학동네 / 2021 (출처: 조선일보)


  책의 제목, ‘작별하지 않는다’. 이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여러 궁금증이 들었다. ‘무엇과 작별하지 않는다는 것일까.’, ‘애시당초 ‘작별’이란 무얼까'와 같은 것들이 말이다. 책을 거의 중간까지 읽고 나서야 이 책이 ‘제주 4/3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제주 4.3 사건


  제주 4.3 사건에 대해 아는 학우들이 얼마나 있을까? 장담하건대 안다고 할지라도 이름만 접해봤을 학우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한국인이라면 한 번쯤 가봤을 ‘제주’, 부담 하나 없이 살러가는 사람들도 많아지는 ‘제주’. 그렇다, 그런 제주에서 일어났던 일임에도 우린 우리가 겪은 일들이 아니기에 잘 알지 못한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 우리가 광주 사람들처럼 치를 떨 정도로 분노할 수 없듯이, 기껏해야 교과서에 한 두 문단으로 소개되는 역사적 사건들에 대해 우리는 많이 알 수 없다. 그조차도 정권이 바뀌고, 교과서가 개정되면 내용이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우리나라에서는 말이다.


  이 사건으로 말할 것 같으면 제주도 역대 참사 중 하나로 손꼽히는, 대한민국 제1공화국 시기에 민간인이 학살된 대표적인 사건이다. 무려 민간인만 약 2만 5천 명에서 3만 명에 달하는 이들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렇게 많은 희생자가 발생할 수 있던 이유는 4.3 사건이 약 7년 7개월에 거쳐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이다. 계엄령을 선포하고, 중산간 마을에 ‘초토화작전’을 실시하여 95% 이상이 소각됐다. 누군가의 가족, 친구, 사랑하는 이들이 명령 하나에 집 채 타버리거나 죽게 된 것이다. 이때의 희생자 수는 최대 제주도민의 1/8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수이며, 아직까지도 유골 발굴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경하’와 ‘인선’


  ‘경하’는 이 책의 주인공으로, 작가이다. 학살에 대한 소설을 쓴 후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긴 무력함과 우울감에 빠져 하루에 한 번 죽조차도 겨우 먹는 상태로 발신인을 누구로 해야 할지조차 정하지 못하는 유서를 여러 번 다시 쓰고 찢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런 ‘경하’의 친구, ‘인선’은 몇 편의 영화를 내고 목공소를 차린 인물이며, ‘경하’와 마찬가지로 억압받았거나 희생당한 이들에 대한 관심이 크다. 그 둘은 언젠가 제주도에서 함께 작업을 하기로 약속을 했었는데, 매년 이런저런 일로 흐지부지되어 후년, 내후년으로 미뤄지기만 하였다. 그렇게 약속을 한 지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그제야 살아보겠다며 집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 ‘경하’에게 ‘인선’의 연락이 온다. 병원으로 와달라는 긴박함이 느껴지는 짧은 문자였다. 병원에 가자 ‘인선’은 침대에 누워 3분에 한 번씩 손가락을 바늘에 찔리고 있었다. 목공소 일을 하다가 검지 손가락과 중지 손가락 한 마디씩이 잘려버리고 만 것이다. 봉합 수술을 받아 침대 밖으로 나가지도, 걷지도, 심지어 말도 많이 해서는 안 되는 ‘인선’은, 그녀의 친구 ‘경하’에게 제주도에 위치한 자신의 집에 가서 돌보던 앵무새 ‘아마’가 죽지 않도록 물과 밥을 달라고 부탁한다. 그렇게 ‘경하’는 ‘인선’의 집으로 향하게 되고, ‘인선’을 통해 그녀의 어머니가 겪었던 제주 4.3 사건의 진실에 대해서 알아가게 된다는 것이 소설의 주된 줄거리이다.



작별하지 말아야 한다.


  ‘작별’에 대해서 사전은 “인사를 나누고 헤어짐. 또는 그 인사”라고 정의한다. 먼 해외로 나가게 되어 가족과 인사를 하거나, 사랑하는 이와 이별하는 순간. 또, 누군가 죽었을 때에도 우리는 작별했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의 작별은 ‘잊혀짐’이다. “죽은 이를 살려낼 수는 없지만 죽음을 계속 살아있게 할 수는 있다.”는 구절이 있었다. 그 대목처럼 우리가 죽은 이들을 살려낼 수는 없지만, 우리의 기억 속에 영원히 살아있게 할 수는 있다. 3분에 한 번씩 손가락을 바늘에 찔러야 신경을 살릴 수 있던 ‘인선’처럼. 광주 5.18 민주화운동, 제주 4.3 사건 뿐만 아니라 이태원 참사, 세월호 참사와 같은 많은 사건들을 말이다. 가슴 아픈 일들이지만, 외려 가슴 아픈 일들이기에 더욱 자주 상기하고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채윤 수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