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호 와인 한 잔: 까다로움 속에서 발견한 삶의 복합미
와인 한 잔: 까다로움 속에서 발견한 삶의 복합미 남영욱 수습기자 당신은 와인이 무엇인지 아는가? 글쎄, 비싼 술? 양주? 포도주? 다양한 이미지가 있을 것이다. 최근(이라고 하기엔 또 지금은 한물간 것 같지만) 와인은 과거에 비해 훨씬 대중적으로 다가온 것 같다. 그러나 와인은, 또 엄청나게 트랜디한 술은 아닌 것이, 소주 맥주의 아성을 뚫을 듯 몸집을 불리다가 2022년도부터 칵테일과 하이볼의 부상으로 그 힘이 꺾여버렸다. 나는 와인의 ‘까다로움’에 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1]사진 출처: 한전진 기자, “위스키 접은 신세계의 방향 전환…와인에 집중“, 비즈워치, 2024. 1. 3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다들 와인의 매력을 알았으면 하는 마음에 있다. 또, 와인 그 자체뿐 아니라 이 와인이라는 술을 즐기게 되면서 내가 맞이한 다양한 정서적, 태도적 변화를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다시 말해 와인의 매력을 소개하며 와인으로 인한 나의 변화까지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와인이란? 와인에 대한 구체적인 제조 과정이나 기원 같은 부분은, 와인을 사랑하게 된 뒤에 알아가도 늦지 않다. 미팅에서도 냅다 “제 고향은 울산시 울주군이며, 엄격하신 아버지와 현명하신 어머니 밑에서 자라…” 등의 자신만의 용비어천가를 읊는 사람은 높은 확률로 애프터 신청을 받지 못할 것이 뻔하지 않은가? 나는 이 글을 읽은 후 부디 와인과 따로 한번 애프터 자리를 가지길 간곡하게 바라는 주선자의 입장이기에, 아직 궁금하지 않고 재미없는 이야기는 조금 넣어두겠다. 대신, “와인은 맥주와 같이 발효를 통해 만든 발효주(양조주)로, 주로 포도주를 의미하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과실’을 발효한 술 전체를 일컫기도 한다”라는 부담스럽지 않은 정도의 자기소개로 이 미팅의 포문을 열어 보고자 한다. 그다음, ‘와인의 맛과 향’, ‘와인을 즐기는 법’에 대해 이야기해 보며 서서히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자. 와인, 어떤 맛, 향이 날까? 사실 와인의 종류는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고 포도의 품종과 세부적인 제작 방식에 따라 맛이 정말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와인은 이런 맛이 난다.”라고 이야기하기 어렵다. 이에 따라 (와인 마니아들이 보면 분개할지도 모르지만) 와인을 그 ‘대략적인’ 맛에 따라 크게 3가지로 나눠보겠다. 1. 식전주 와인 1번 식전주 와인은 말 그대로 식전에 먹는 와인으로 음식을 먹기 전 입맛을 돋우기 위해 쓰거나 신 것이 특징이다. 우리는 아직 식전에 와인으로 입맛을 돋울 정도로 와인과 친하지 않기 때문에 1번은 사실 접할 일이 거의 없다. 2. 테이블 와인 2번 테이블 와인은 우리가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종류의 와인으로 음식을 먹는 중에 먹는 와인이다. 흔히 말하는 레드 와인은 육류, 화이트 와인은 생선류에 어울리며, 마찬가지로 식사 중에 먹기 때문에 보통 그리 달지 않다. 레드는 떫은맛, 화이트도 디저트 화이트 와인과는 달리 드라이한(달지 않은) 맛을 띄는 경우가 많다. 3. 디저트 와인 마지막으로 3번 디저트 와인은 식후에 디저트로 즐기는 와인으로 보통 달콤한 것이 특징이다. 맛과 종류가 정말 다양한데, 크게 잡아도 탄산이 있는 스파클링 와인과 샴페인, 무지 달고 도수가 높은 포트 와인과 크림셰리 와인, 값비싼 귀부 와인(소테른, 바르샥), 건포도를 사용한 패시토 와인, 시원하게 마시는 아이스 와인 등등의 다양한 종류가 있다. 와인, 그래서 어떻게 먹으라는 건데? 아주 좋은 질문이다. 암만 무슨 무슨 맛이 나고 설명을 해봤자 미각은 텍스트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혀로 느끼는 것이기 때문에, 직접 먹어봐야 그 맛을 알 수 있다. 이에 따라 지금부터는 대략적인 취향을 파악할 수 있는 저렴한 입문 코스를 소개하고자 한다. [2]비서에게 와인을 알려주는 하도영, 사진 출처: 유퀴즈온더블럭 166회 “신 대표가 보낸 거면 백(만원) 이하는 아닐 겁니다. 들어가는 길에 편의점에서 만 원짜리 와인을 한 병 사요. 치즈도 좀 사고. 그 만 원짜리 와인을 먼저 마시고, 그걸 마셔요. 그럼 마실 줄 알게 될 겁니다.” 드라마 <더 글로리>의 등장인물 하도영이 비서에게 고가의 와인을 마시는 방법을 알려주는 장면의 대사이다. 우리는 이러한 ‘비교 시음’의 방법으로 와인에 입문해 볼 것이다. 우선 앞서 소개한 맛 중 1번 3번 와인은 과감하게 배제하겠다. 아무래도 입맛을 돋우는 게 목적인 식전주 와인은 입문에 호불호가 지나치게 갈리며, 달달하고 맛있는 디저트 와인은 호불호 없이 그냥 먹으면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따라서 2번 테이블 와인 위주로 코스를 설명할 텐데, 편의점에서 구할 수 있는 가성비 테이스팅 코스를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내가 권장하는 친구는 바로 이 녀석이다. [3] 대선주조의 ‘와인 반병’, 사진 출처: 노수윤 기자, “대선주조 칠레산 까쇼로 만든 '와인 반병' 출시 “, 머니투데이, 2022. 9. 27 이 친구는 대선주조의 ‘와인 반병’으로 소주병에 칠레산 와인을 채운 제품이다. CU편의점에서 3000원에 구매할 수 있다. '와인 반병'은 우선 용량이 360ml로 한 번에 마시기에 부담이 없고, 가격도 3000원으로 저렴하다. 우선 향은 무난한데, 달달한 과실 향에 오크 향이 난다. 맛은 향에서 유추할 수 있는 바와 같이 포도 주스 맛이 나지만, 드라이하며 바디감은 없으며 산도는 적당하다. (드라이니 산도니 하는 용어는 아래에서 설명하겠다) 그리고 저가 와인 특성상 약간 시원한 상태로 먹는 것을 추천한다. 이 와인은 ‘와인 마니아’ 입장에서는 세부적인 부분에서 완성도가 높지 않지만, 와인의 ‘결’을 가격에 비해 훌륭하게 표현한 와인이다. 이에 이 와인을 마신 후 정말 참기 힘들 정도로 맛이 없다면, 그 ‘결’과 맞지 않으니 그냥 디저트 와인을 드시면 된다. 애매하거나 먹을만하다고 생각했다면,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다음 단계에서는 이 친구를 추천한다. [4] ‘까시에로 델 디아블로’, 사진 출처: 까시에로 델 디아블로 코리아 홈페이지 이 친구는 ‘까시에로 델 디아블로’로 편의점에서 만 원대에 구할 수 있는 와인이다. 이 와인은 이 가격대의 와인 중 가장 와인의 표준과도 같은 맛이다.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맛은 각자 느끼는 바가 다를 것이지만, 대략 와인을 처음 먹는 사람 입장에서는 위의 ‘와인 반병’의 맛과 결이 비슷할 것이다. 하도영씨가 제안한 바와 같이 앞선 와인 반병을 한 모금 마신 후 그 맛을 기억한다. 그 후에 이 와인을 맛본다. 그다음 비교를 해본다. 그 차이를 알아낸다면 이제 어디 가서 와인을 마실 줄 안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 와인, 너 상당히 까다롭구나! 와인이 대충 입맛에 맞았다면 이제 와인을 더 맛있게 먹는 법을 알려주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굉장히 까다롭다. 와인은 온도, 습도, 진동, 산소 접촉 등등의 각각의 모든 요소에 치명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이에 이러한 요소들을 적절히 통제해야 한다. 그런 까다로운 절차를 축약하고 축약해 보관, 준비, 마실 때의 3가지 측면에서 말해보고자 한다. [5] 와인셀러, 사진 출처: 데이코 홈페이지 (1) 보관 먼저 ‘보관’이다. 사실 초심자라면 와인을 보관해서 두고두고 먹기보다는 그때그때 사 먹는 것을 추천한다. 새 와인의 경우에 온도, 습도, 진동(가격이 좀 나가는 와인의 경우 냉장고의 진동에 맛이 미묘하게 망가진다.)을 고려할 때 보관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어렵다. 또 먹던 와인의 경우에도 한번 뚜껑을 열면 산화가 시작되어 맛이 달라지는데, 하루가 지난 후부터는 그 맛이 심각하게 달라져 버리기 때문에 가급적 먹던 병을 남겨 보관해 두기보다는 개봉한 병은 하루 안에 비워야 한다. 다만 맛있어 보이는 와인을 발견하고 다음에 먹기 위해 사 온 상황이라면, 두 가지만 기억해 보자. 디저트 와인은 냉장고에, 나머지는 서늘한 그늘에. [6] 사진 출처: 임승수, 고정미, “와인을 빙빙 돌려 마시면 벌어지는 일 “, 오마이 뉴스, 20.05.31 (2) 준비 다음으로 ‘준비’다. 우리는 와인을 마시기 전, 일련의 준비 과정을 거쳐야 한다. 바로 공기 접촉과 관련한 부분이다. 와인이 공기에 접촉하면 와인 속에 잠자고 있던 방향성 물질[7]이 산소와 결합하여 와인 특유의 향을 발산하고, 잡내가 날아가게 된다. 이러한 공기 접촉을 극대화하는 방법으로는 두 가지가 있다. 중요한 부분이니 기억하기 어렵다면 캡처해 두자. 첫째, 마시기 30~60분 전에 미리 뚜껑을 열어두기. 둘째, 와인을 마시기 전 와인잔을 둥글게 흔드는 스월링. 특히 저렴한 와인의 경우 잡내가 나기 쉬워 와인 초심자들이 이런 와인들을 개봉하자마자 마시고서 와인이 맛없다 느끼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 두 방법을 잘 기억해 두자. (3) 마실 때 마지막으로 ‘마실 때’다. 와인을 마실 때는 소주처럼 그냥 털어 넣고 바로 삼키기보다는 일종의 ‘퀴즈 쇼’을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재미있다. 이 와인을 맞추는 퀴즈 쇼 말이다. 이를 위해 퀴즈를 맞히기 위한 간단한 공식의 틀을 먼저 알려주고자 한다. 크게 타닌감, 바디감, 드라이, 산도의 네 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다. 먼저 ‘타닌감’이란 와인의 떫은 정도를 말한다. 타닌감이 많이 느껴진다고 한다면 떫은 와인이 되시겠다. 다음으로 바디감은 질감이 느껴지는 정도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와인을 마셨는데 와인이 입에 남는 것 없이 깔끔하게 들어간다면 바디감이 낮은 것이다. 반대로 뭔가 질겅질겅 씹히는 듯한 느낌이 들고, 점성이 느껴진다면 이는 바디감이 높은 것이다. 세 번째로 ‘드라이’는 단맛이 느껴지지 않는 정도를 말한다. 단맛이 없다면 “드라이하다”라고, 단맛이 있다면 “스위트하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산도’란 와인에 신맛이 나게 하는 요소로, 와인을 마셨을 때 입에 침이 고이게 하는 정도로 느낄 수 있다. 이제 이 네 가지 틀을 바탕으로 와인을 마시고 판별하면 된다. “음. 이 와인은 타닌감이 없군, 오 그런데 바디감은 많이 느껴지는걸? 확실히 깔끔하며 드라이하군. 산도는 식사와 곁들여 먹기 적당한 정도?”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러면 대강 와인의 맛을 판별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취향 등 다양한 와인 토크를 나눌 수도 있다. 이렇게 와인을 마시는 법에 관해 설명을 해보았다. 그런데 이쯤에서 “뭘 그렇게까지 해서 먹냐, 그냥 대충 먹어보고 맛없으면 안 먹으면 안 되나?”와 같은 생각이 드는 분이 계실 것이다. 바로, 그 "뭘 그렇게까지 해서 먹나"라는 말이 핵심이다. 까다롭고 복잡한 와인, 편리하고 단순한 시대 앞서 말한 것처럼, 내 생각에 와인의 상승세가 꺾인 이유는 그 까다로움에 있다. 요즘 시대는 쇼츠 콘텐츠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는 아주 편리하고 간편한 시대이다. 그렇게 간편함을 즐기는 시대에 제작부터 병입, 구입, 보관, 입 안에 들어와서까지 까다롭지 않은 부분이 없고 비효율적인 와인을 즐기는 것은 어떻게 보면 정말 시대에 뒤떨어진 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것을 정말 편리하게 즐겨야 할까? 쓱 짧게 한번 마시고 이건 맛없으니까 됐고 이건 좋고 하는 식으로 단편적으로 판단하기보다는, 와인을 즐기듯 한번 인생을 즐겨보면 어떨까? 어떠한 상황을 마주하더라도 와인을 즐기듯 상황을 복합적으로 뜯어보고 요소를 하나하나 요목조목 관찰하다 보면 전체적으로 좋고 나쁜 상황이란 존재하기 어렵다. 다시 말해 긍정적 상황과 부정적 상황 같은 것은 실상 없다. 모든 것은 나의 혹은 외부의 어떠한 행동과 작용에 의한 인과일 뿐 어떠한 누군가가 이름 붙여준 개념적인 상황이 아니다. 그렇기에 부정적인 요소는 있어도 총체적으로 부정적인 상황 같은 것은 존재하기 어렵다. 와인을 마시는 방법에서 우리가 "음 맛없어", "음 맛있어"라고 단편적으로 평가했던가? 그렇지 않다. “음. 이 와인은 타닌감이 없군, 오 그런데 바디감은 많이 느껴지는걸? 확실히 깔끔하며 드라이하군. 산도는 식사와 곁들여 먹기 적당한 정도?”라고 평가했었다. 타닌감이 없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바디감은? 드라이함은? 하나의 요소가 어떠하다고 그 와인이 단편적으로 어떠한 와인이라고 평가할 수 없다. 단편적으로 상황을 규정지어 일희일비하는 분들에게, 복합적인 요소를 평가하는 태도를, 와인을 한잔 권해보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벌써 맛없다고 하지 마. 아직 다 안 마셨어, 마저 한잔해! *경고: 지나친 음주는 뇌졸증, 기억력 손상이나 치매를 유발합니다. 참고 와인맛 알았으면 안죽었을까? ‘더글로리 속 와인’에 감춰진 진실 [전형민의 와인프릭] - 매일경제 (mk.co.kr) [1] 사진 출처: 한전진 기자, “위스키 접은 신세계의 방향 전환…와인에 집중“, 비즈워치, 2024. 1. 3 [2] 비서에게 와인을 알려주는 하도영, 사진 출처: 유퀴즈온더블럭 166회 [3] 대선주조의 ‘와인 반병’, 사진 출처: 노수윤 기자, “대선주조 칠레산 까쇼로 만든 '와인 반병' 출시 “, 머니투데이, 2022. 9. 27 [4] ‘까시에로 델 디아블로’, 사진 출처: 까시에로 델 디아블로 코리아 홈페이지 [5] 와인셀러, 사진 출처: 데이코 홈페이지 [6] 사진 출처: 임승수, 고정미, “와인을 빙빙 돌려 마시면 벌어지는 일 “, 오마이 뉴스, 20.05.31 [7] 방향성 물질(=방향 화합물(芳香 化合物), 아로마)은 향기가 나는 화합물이다. 일반적인 향 또는 향수와는 달리 냄새 뿐만 아니라 맛에도 영향을 준다.
제 7 호 행복정도는, 누구나 누릴 수 있잖아
행복정도는, 누구나 누릴 수 있잖아 이선민 정기자 한 학기 종강 후, 방학을 앞두고 가장 좋아하는 카페에 와서 좋아하는 빵을 먹으며 글을 쓴다. 내 발은 노래의 박자에 맞추어 움직이고 있다. 수많은 주제 중에 어떤 주제를 선택할지 고민하면서 빵을 먹고 있으니,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행복감이 밀려온다. 행복, 행복이 싫은 사람이 있을까? 단언컨대 나 자신이 행복해지는 것을 싫어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고 본다. 행복의 사전적 정의는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 누군가는 운동을 하고,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또 전시회를 방문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행복함을 느낄 수 있다. 가끔 일상을 살아가는 게 답답하다고 느끼면 산에 있는 절에 가서 가만히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시간을 흘려보내곤 한다. 절에 간 김에 기도할 때면은 “우리 가족 항상 행복하게 해주세요”라고 빈다. 왜일까? 누군가에게 부탁하면서까지 왜, 행복이라는 단어에 집착하고 행복이 주는 의미를 놓지 못하는 것일까? 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이 기사를 읽으면서 내가 생각하는 행복에 대해 공감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닌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각자가 생각하는 행복은 무엇인지를 곱씹으며 이 글을 함께 즐겨준다면 고마울 것 같다. (1) 당신에게 행복은 무엇인가요? 행복이라는 단어를 뭐라고 생각하는지 질문을 띄우고 싶다. 나 같은 경우엔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그런 상황이 딱 떠오른다. 우리는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여러 과정을 거친다. 행복을 영위하기 위해 그 어떠한 고통도 감내하고, 고통의 이유를 미래의 행복을 위한 과정이라는 말로 포장하기도 한다. 단순히 우리는 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왜 이렇게 많은 과정과 이유가 붙어야만 하는 걸까? 행복을 누리기 위한 방법은 거창하지 않다. 나 같은 경우에는 우울감이 몰려오거나 슬픔을 감내해야 할 때가 온다면, 소소하게 좋아하는 몇 가지 방법을 실천하면서 극복하려고 노력한다. 먼저 좋아하는 카레 집에 가서 수프 카레를 포장해 온다. 매장에서 직접 먹어야 맛이 있지만, 이때만큼은 오로지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나에게 집중하기 위해서 번거로움에도 포장을 한다. 그 이후에 평소 자주 먹는 음료수와 케이크를 포장해 온다. 이제 집에서 따뜻한 수프 카레를 먹으면서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간식을 먹는다. 이렇게 하면 이 순간만큼은 좋아하는 것들로 내 시간을 가득 채우기 때문에 우울한 감정보다는 ‘이렇게 하니까 너무 행복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이렇게 행복을 누리고자 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2) 행복은 사소한 곳에서 시작하여 나에게 스며들어온다. 나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다들 한 번쯤은 보여주는 행복을 경험해 본 적 있지 않은가? 내 삶의 주체인 나, 나의 감정을 먼저 살피고 사소하지만, 행복함을 느끼는 행동을 하는 것은 어렵지도 않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어린아이들이 자신의 감정에 더 솔직하고 표현을 잘한다고 한다. 어릴 때 사촌 동생은 항상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언니 만들기 도와줘서 고마워, 난 언니같이 좋은 사람이 우리 언니라서 너무 행복해”라고. 그때는 그저 고마움을 표현하고자 하는 간단한 인사치레라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에겐 단순히 설명서를 읽고 아이가 만드는 과정에 도움을 준 것밖에 없는데, 그 도움의 행동이 동생에게는 도움의 과정을 더불어 결과에 이르기까지 행복함을 표현할 수 있는 큰 의미로 다가왔다는 점이다. 작다고 생각한 동생의 세상에서 내 도움이 큰 기억으로 남았다니, 다시 생각해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순간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우리의 감정 표현에 인색하게 되었을까? 이 순간이 불편하다면 불편하다고, 행복하다면 행복하다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하고 당당하게 표현하지 못한다면, 그건 가짜로 버무려진 나의 보여주기식 감정, 행복이 아닐까? (3) 나를 위한 행복은 없나요? 이런 보여주기식 행복함이 추구되는 이유에는 SNS의 발달이 한몫한다고 생각한다. 대표적으로 인스타그램이 있다. 인스타그램 속 스토리라는 기능은 24시간 동안 사진 또는 동영상을 올려서 팔로워라면 함께 볼 수 있다. 인스타그램의 게시물, 스토리를 보면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행복한 것처럼 보인다. 사실 나는 21학번으로, 2023년도에 상명대학교로 편입했다. 상명대로 편입하기 전, 세상에 내 자리는 존재할까? 내가 있을 곳은 어디인가? 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나는 아직 제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저 친구는 어느새 나보다 더 좋은 직업을 가지고 해외여행도 자주 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와 부럽다,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다 보니 나도 다른 곳에 여행을 가면 꼭 사진을 한 장씩 올리게 됐다. 나도 누군가가 보기에 멋지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싶다는 마음에 허영된 마음이 투영된 모습을 올리게 된 것 같다. 이렇게 부러움으로 포장된 모습을 본 또 누군가는 이런 거짓된 모습을 보고 또 다른 누군가가 행복하게 지내는 것 같아서 부럽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모습이 진정한 나의 행복감을 추구하는 모습인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야 할 모순점이라고 생각한다. 순간의 내 일상의 모습을 기록하기 위해 SNS를 활용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남의 모습을 보고 내가 열등감을 느끼게 되는 순간, 이 행동은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 나의 보여줄 수 있는 모습만을 공개하는 것이 행복함을 영위하는 길일까? 여기서 나는 사람은 태어난 모습도 다르고, 살아온 배경도 다르고 앞으로의 꿈꾸는 각자의 미래도 분명히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기에 사람마다의 추구하는 행복의 모습과 행복의 방향성, 그리고 그 길이 같다고 할 수 없다. 우리가 어릴 적 자주 보던 이솝우화에 나오는 두루미와 여우의 이야기를 떠올려보자. 이들이 음식을 먹을 때 같은 그릇을 사용할 수 없었던 것처럼, 다른 사람의 행복과 나의 행복도 동일 선상에 둘 수 없다. 나는 나고, 너는 너다. 각자가 좋아하는 음식과 취향이 모두 다른데, 왜 ‘행복’이라는 점에서는 모두가 똑같은 모습을 추구하고 나도 저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는 한 번 더 생각해 볼 문제이자 어디서나 우리가 겪는 딜레마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쓰면서 나에게 행복이란, 행복은 어떤 의미일까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리는 행복하고 싶지만, 현실에 치여 미루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행복해지려면 무언가 행동을 취해야 하고, 그에 따른 시간과 비용 그리고 노력이 들기 때문에 선뜻 도전하기 어려워하는 것 같다. 한국은 아직 개인주의보다는,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는 느낌이 강하기 때문에 남들과 같은 흐름으로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경향이 있다. 행복을 위해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시간과 그럴 용기가 필요하다.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나만의 기준을 성립해야만 온전한 행복의 만족도를 추구할 수 있다고 다시 한번 말하고 싶다. 위 글을 읽고 아직도 행복이라는 단어가 막연하고 낯설어 스스로 돌아보고 고민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온전히 나만의 기준을 성립하고 나에게 집중하라고 해서 꼭 나 혼자만의 행복이라고 단정 짓지 않아도 좋다. 행복은 개인적인 감정이지만, 사회적 관계와도 깊은 연관이 있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사회적 동물로서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많은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서로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관계는 우리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어려운 순간에도 힘이 된다. 언제 이 행복이 사라질까 라는 두려움보다는 힘이 든다면 가족, 친구, 동료 등의 도움을 받아 성과 같은 단단한, 그러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남들과 행복의 기준이 좀 다르면 어떤가, 그것대로 우리는 매력 있는 사람인데. 누구보다 자신의 행복을 소망하는 당신을 위해, 오늘도 한 걸음 더 행복해집시다! [참고자료] 1. 유원경 기자, 출가 서원의 고민, 함께 나누는 훈련, 원불교 신문, 24년 08월 16일, https://www.wo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0299
제 7 호 꽁꽁 얼어붙은 저작권 세상
꽁꽁 얼어붙은 저작권 세상 이소명 편집장 ♪ 꽁꽁 얼어붙은 한강 위로 고양이가 걸어 다닙니다 저절로 숏폼 챌린지가 떠오르는 우리에게 익숙한 그런 멜로디 아닌가요? 이른바 ‘꽁냥이’ 챌린지입니다. 꽁냥이 챌린지뿐만이 아닙니다. Shorts, Reels, Ticktok에는 자연스레 멜로디를 흥얼거리게 되고, 안무를 따라하게 되는 그런 익숙한 챌린지들이 셀 수 없이 많아졌는데요. 숏폼은 우리들의 일상에 자연스레 침투하여 우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고, 이제는 떼레야 뗄 수 없는 그런 존재가 되었습니다. 저 또한 학교 가는 길 버스 안에서부터 혼자 밥을 먹을 때면, 그리고 자기 전 침대에 누워서까지 하루 종일 숏폼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간편하고 손쉽게 우리에게 재미를 주는 숏폼이지만, 우리가 소비하는 이 콘텐츠가 누군가의 저작권을 침해하고 있다면 어떨 것 같으신가요? 그래서 오늘은 숏폼 속 노래와 안무의 저작권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 합니다. 불분명한 ‘꽁냥이’노래의 저작권자 꽁냥이 노래는 MBN 이시열 기자의 보도 즉 목소리로 인해 시작되었습니다. 2021년 강추위 보도를 기획하던 기자는 가사 그대로 ‘꽁꽁 얼어붙은 한강 위의 고양이’를 목격하고, 뉴스에서 보기 드문 귀엽고 위트 있는 장면이라 생각해 해당 장면을 사용했다고 밝혔습니다. 해당 강추위 보도를 보게 된 크리에이터 ‘행복한 피자빵’은 보도에 박자를 맞추고, 효과음 등을 넣어 꽁냥이 음원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음원을 듣게 된 틱톡커 ‘산고’가 노래에 맞춰 안무를 만들며 챌린지가 완성되었는데요. 이후 이 챌린지는 말 그대로 대성공을 이뤘습니다. 유명 크레에이터 뿐만 아니라 연예인까지 챌린지에 동참한 것인데요. 이렇게 꽁냥이 챌린지는 일종의 ‘밈(meme)’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꽁냥이 챌린지’에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과연 누가 이 노래의 저작권자가 될 인가에 대해서 말이죠. 노래의 시발점이 됨과 동시에 자신의 목소리가 노래를 구성하는 이시열 기자일까요? 아니면 보도에 박자를 맞추고 효과음을 넣어 현재의 노래를 만든 행복한 피자빵일까요. 어찌 되었든 저작권자는 이 두 명 중 한 명이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이시열 기자도, 행복한 피자빵도 아닌 제3자가 노래의 저작권자가 되는 믿을 수 없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사건의 전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행복한 피자빵은 이 기자의 목소리를 단순 리믹스 한 것이고, 또 수익 창출이 아닌 재미를 목적으로 만든 노래이기에 저작권 등록을 하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이를 알게 된 외국인 틱톡 이용자가 해당 노래의 저작권을 틱톡에 등록한 것인데요. 행복한 피자빵은 외국인 이용자에게 메신저를 통해 음원 등록을 취소해달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외국인 이용자는 음원 등록은 취소했지만, 자신이 돈이 없으니 음원 등록을 이어 나가게 해주면 안 되냐는 황당한 답장을 보내왔다고 합니다. 노래의 적법한 저작권자가 아닌 제3자가 저작권 등록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박상오 변호사는 이런 질문에 플랫폼상의 저작권을 등록하는 경우에 등록자가 누구인지 면밀히 보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유튜브나 틱톡 같은 어플 내에서 저작권을 등록하는 경우 그 과정이 플랫폼 내에서만 이루어지기 때문에 국가기관에 등록 신청을 하는 것보다 다소 허술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위 사례처럼 플랫폼에 위조한 서류를 제출하여 저작권을 등록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됩니다. 플랫폼 내에서는 저작물의 저작권자가 될지라도, 위조한 서류를 통해 성립된 저작권자는 적법한 저작권자가 아닙니다. 우리가 소비하고 있는 창작물은 누군가의 땀 흘린 노력이며 소중한 자산입니다. 안무에도 저작권이 있나요? 여러분이 가장 인상 깊었던 챌린지는 무엇인가요? 챌린지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지코의 ‘아무 노래’ 챌린지, 댄서 열풍을 불어온 노제의 ‘Hey Mama’ 챌린지. 각자 다양한 챌린지를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이 모든 공통점은 안무가 있다는 것일 텐데요. 여기서 의문점이 생깁니다. 노래에는 저작권이 있고 저작권자가 그에 대한 수입을 얻는 건 당연한 건데, 안무에도 저작권이 있을까요? 우선 안무에도 저작권이 있습니다. 저작물 중에서도 안무는 ‘연극저작물’에 속합니다. 한국저작권위원회 전재림 책임연구원은 단순 동작이나 몸짓은 저작권으로 등록이 불가하지만, 동작이나 몸짓을 창조적으로 조합・배열하는 경우라면 저작권으로 등록이 가능하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등록 저작물 중 안무는 0.1%에 불과한데요. 안무에 대한 저작권료를 받을 방법이 현실적으로 없기 때문입니다. 음악은 음악저작권협회와 같은 신탁단체가 저작권료를 대신 받아주고 저작권 보호를 해주지만 안무에 관해서는 이러한 단체가 없다는 것도 저조한 등록률의 이유입니다. 대흥행에 성공했던 ‘Hey Mama’ 챌린지의 안무 제작자 노제는 안무 제작에 대한 수입이 0원이라 밝혀 대중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한 바가 있는데요. 이뿐만이 아닙니다. 구독자 2,630만 명을 보유한 댄스 엔터테이먼트 ‘1MILIION Dance Studio’의 유튜브 계정의 수익 또한 0원이라 밝혔습니다. 콘텐츠 노출에 대한 수익은 오직 노래 저작권자에게 돌아가는 구조이죠. 안무를 제작한 댄서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많이 남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 안무가들이 의기투합하였습니다. K댄스를 선두하는 대표 안무가들이 한국안무저작권협회를 출범한 것인데요. 2024년 4월 한국안무저작권협회의는 유명 안무가 리아킴을 초대협회장으로, 최영준・팝핀현준・아이키・가비・백구영 등을 이사로 선임하며 창립총회를 개최했습니다. 리아킴 초대협회장은 “안무저작권 보호는 직업인으로서 안무가의 경제활동은 물론, 더 나은 창작을 위한 동기를 부여하는 선순환을 가능하게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K댄스가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기에 K안무가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안무 저작권 보호에 앞장서게 된 것입니다. 정부도 불안정한 안무저작권에 대해 대응을 내놓았는데요. 올해 안에 배포할 계획으로 안무저작권과 관련한 가이드라인 마련에 착수하였다고 밝혔습니다. 가이드라인에는 ‘안무저작권 인정 기준, 안무 분야 표준 계획서, 저작권료 산정 가이드’를 담게 될 전망입니다. 정부의 이런 행보는 안무에 대한 가치를 인지하고 제도적인 보호를 제공하려는 취지로 보입니다. 하지만 정부의 가이드라인은 말 그대로 가이드라인일 뿐 법적 구속력이 없습니다. 법적 구속력이 없는 정보의 지침이 업계 당사자들의 인정을 받고, 실제로 상용화되기 위해선 합리적인 가이드라인이 완성되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더불어 한국안무저작권협회가 자리를 잡고 기관의 공신력이 인정된다면 안무에 대한 안정적인 저작권 보호도 머지않은 미래라 생각됩니다. 우리의 자산이 될 수도 있는 무형의 자산, 저작권 오늘은 저작권 그중에서도 노래, 안무 저작권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노래는 저작권법상 ‘음악저작물’에 안무는 ‘연극저작물’에 속하는데요. 저작권이 인정될 수 있는 대상은 우리가 흔히 아는 음반, 안무, 소설, 미술품 등 외에도 다양합니다. 대상물에 따라 다르게 판단되겠지만 사진, 지도, 설계도 등도 등록이 가능합니다. 이에 더불어 편집저작물과 2차 저작물도 있는데요. 편집저작물은 저작물이나 부호・문자・음성・영상, 그 밖에 자료 등 소재의 집합물인 편집물로서 그 소재의 선택이나 배열 또는 구성에 창작성이 있는 것입니다. 예컨대 한국대표문학선집 등이 편집저작물에 해당하는 것이죠. 편집저작물은 여러 대표문학을 모아 구현된 편집방법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2차 저작물은 기존의 원저작물을 번역・편곡・변・각색・영상 제작, 그 밖의 작성한 창작물을 말합니다. 유명한 소설이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 외에도 다양한 곳에 저작권은 존재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아이디어가 구현되어 그 창작성이 인정된다면 우리도 언제든지 저작권자가 될 수 있는 것이죠. 안무 저작권의 보호가 각광받는 것처럼 앞으로도 실질적 보호를 받게 될 저작권은 확대될 추세입니다. 따라서 저작권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자산이 되어줄 저작권을 위해 올바른 저작권 소비가 필요한 시기입니다. [참고문헌] 1. 김기태, 편집저작물에 대한 저작권 침해의 기준, 2017.06.12., 대한출판문화협회, https://member.kpa21.or.kr/kpa/rights-qna/?mod=document&uid=817 2. 유인춘, 한국안무저작권협회 발기인대회 및 창립총회 개최, 2024.04.25., startup news, https://www.startupn.kr/news/articleView.html?idxno=45623 3. 이예슬, K-POP 안무 저작권 인식 사례연구,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2015.2., https://academic.naver.com/article.naver?doc_id=765759599 4. 황선영, [단독] 정부, ‘안무저작권 지침’ 만든다・・・ ‘뉴진스 사태’로 연말까지 가이드라인 마련, 2024.05.18., 티비조선, https://news.tvchosun.com/site/data/html_dir/2024/05/18/2024051890073.html 5. 스브스뉴스, 밈이 된 뉴스 "꽁꽁 얼어붙은 한강 위로..." 외국인이 저작권 훔쳐 감;;, 2024.04.26., https://www.youtube.com/watch?v=njSReAiNMFo 6. MBN NEWS, 20240.04.22.,카리나도 '꽁냥이' 챌린지…뉴스도 밈이 된다 [MBN 뉴스7], https://www.youtube.com/watch?v=J-RNroCCrP4 7. 14F, 안무도 저작물! 숏폼 찍을 때 알아두면 좋을 안무 저작권, 2023.04.26., https://www.youtube.com/watch?v=yVHG8xAH8Z0
제 7 호 자신만의 작은 숲이 있나요?
자신만의 작은 숲이 있나요? 이소명 편집장 가끔 무기력에 나의 일상이 먹혀버릴 때가 있다. 우리는 한 번쯤 우울함에 지배당하는 그런 시기를 겪는다. 우울함을 극복하는 방법은 각기 다르겠지만, 나는 한없이 게을러진다. 평소에도 잠이 많은 편이지만, 우울할 때는 24시간 중 14시간 이상은 자는 것 같다. 좋은 극복 방법이 아니란 것은 내 머리도 내 몸도 알고 있다. 하지만 우울함을 내 머리에 자리 잡게 한 근본적인 원인을 애써 외면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고 스스로 결론 내렸다. 운동을 한다던가, 공부를 한다던가 생산적인 활동을 하면서 우울함을 외면할 수도 있겠지만 그럴 힘조차 없을 때가 있기 마련이다. 하루는 오이가 잔뜩 들어간 비빔국수가 먹고 싶었다. 나는 날이 더워지면 밥에는 손이 잘 안 가는 것 같다. 면이나 빵 같이 비교적 가벼운 음식이 더 생각난다. 요리엔 솜씨가 없어 얼추 비빔국수 맛이 나는 비빔면을 시원하게 끓인 뒤 오이를 잔뜩 올려 먹었다. 그러다 보니 몇 번이고 되돌려본 영화 ‘리틀 포레스트’가 떠올랐다. 비빔면이 얼추 비빔국수의 맛을 따라갈 수 있듯이, 나도 리틀 포레스트의 주인공 혜원의 결론을 얼추 따라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나만 돌아왔다. 아무것도 찾지 못한 채 혜원은 임용고시를 준비하지만 계속해서 시험에 낙방하게 된다. 하지만 ‘좋은’ 사람은 아니었던 혜원의 남자친구는 임용고시에 합격해 버렸다. 게다가 변변치 못한 음식으로 매일 끼니를 때우던 혜원은 자신의 삶에 지쳐버린다. 그렇게 무작정 혜원의 고향으로 향하게 된다. 집에 도착한 혜원은 아무도 없는 고향 집에 얼어붙어 있던 배추를 뽑았다. 그리고 집 안에 남아있던 한 줌의 쌀과 양념으로 배춧국과 쌀밥을 만든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시골길을 혼자 내려가, 아무도 없는 집에서 식사를 했지만 혜원은 안정을 느끼게 된다. 여태까지 나의 작은 숲은 ‘잠’이라고 착각했던 것 같다. 작은 숲이란, 여유와 안정을 찾도록 도와주는 곳이다. 그렇게 무언가를 다시 시작할 힘을 충전하는 곳이 아닐까. 그러니깐 잠은 작은 숲에 속할 수 없다. 잠깐 쉬어가며 나를 재충전하는 곳은 작은 숲이 될 수 있지만, 잠은 날 갉아먹을 뿐이다. 겨울을 겪어 낸 양파는 봄에 심은 양파보다 몇 배나 달고 단단하다. 나의 잠처럼 혜원도 현실을 외면한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자 모를 심고, 여름에는 참외를 수확해 먹는다. 또 가을에는 밤을 줍는다. 이런 고향살이에는 혜원의 친구인 재하와 은숙이 함께 한다. 다 같이 자연을 가꾸고, 자연을 통해 얻은 작물로 음식을 만들어 먹는 일상을 보낸다. 하지만 재하와 은숙은 혜원이 현실을 외면한 채 고향으로 도피해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느 날 재하는 혜원의 정곡을 찌르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그렇게 바쁘게 산다고 문제가 해결돼?” 임용을 준비하던 혜원은 더 이상 시험을 준비하지 않고 자연을 가꿀 뿐이었다. 그렇다고 시험을 마음속에서 완전히 떨쳐 내지도 못했다. 또, 혜원은 ‘좋은’ 사람은 아니었던 남자친구에게 명확한 이별을 고하지 못했다. 간간히 짧은 연락을 하며, 애매한 연인 관계를 아슬아슬하게 이어 나가고 있을 뿐이었다. 자연을 가꾸는 데만 몰두한 채 자신의 꿈과 사랑은 애매하게 외면하고 있었다. 혜원은 재하의 날카로운 질문을 듣고 나서야, 고향에 내려온 지 1년이 다 되어가서야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하지만 혜원은 자연과 함께 한 1년을 통해 삶의 방향성을 찾을 수 있었다. 겨울에 고향으로 내려왔던 혜원은 다시 겨울이 찾아오고 깊어질 때쯤 서울로 올라간다. 서울로 올라가 무얼 하는지는 명확히 나오지 않지만, 아마 쉽사리 정리하지 못했던 일들을 훌훌 털어버린 것 같다. 그리고 봄이 되자 혜원은 다시 고향으로 내려온다. 그 1년이 있었기에 서울에서의 일들을 정리할 용기가 생기고, 새로운 목표를 세울 수 있었던 혜원이다. 다른 사람이 결정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아서 처음 이 영화를 보고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어느새 리틀 포레스트는 힘들 때마다 생각나는 영화가 되었다. 나와 어느 정도 비슷한 처지인 혜원이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바라볼 뿐인데 왠지 모르게 위안이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때마다 나만의 숲을 찾지는 못했던 것 같다. 온전히 나만을 위한 공간, 완전히 나를 내려놓을 수 있는 공간이 마땅히 없다고 생각했다. 그저 시간이 약이라 생각하며 힘든 감정을 떨쳐냈다. 그런데 나의 생각을 바꿔준 누군가의 한마디가 있었다. “우리 모두는 집이 있어야 해요. 힘들 때 돌아갈 수 있는 그런 집 말이죠.” 이 말을 듣고선 리틀 포레스트의 작은 숲이 생각났다. 그러고는 난 여전히 작은 숲도 나의 집도 찾지 못했다는 사실이 조금 암울했다. “저의 집은 자우림이죠. 그리고 뭐 여러 개가 있겠죠. 여러분의 집은 무엇인가요? 아직 집을 찾지 못했다면 여러분 스스로가, 나 자신의 집이 되어주면 되죠” 그제야 아차 싶었다. 날 다스리고 지킬 수 있는 건 결국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을 놓치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듣고, 나를 위해 하는 이런 일상적인 선택들의 소중함을 너무 늦게 알게 된 듯하다. 앞서 말했듯 나는 아직 작은 숲을 찾지 못했다. 그렇지만 혜원도 나도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이미 작은 숲을 1개씩은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 자신이 가장 따스한 작은 숲이며, 가장 안정적인 집이라는 사실을 놓치고 살아왔던 것일지도 모른다. 나도 나만의 작은 숲을 찾아야겠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속에서 가장 끌렸던 인물이 있다. 놀랍게도 혜원이 아니라, 혜원의 엄마이다. 혜원이 어렸을 때 몸이 안 좋았던 아빠의 요양 생활을 위해 혜원의 가족은 시골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혜원의 아빠가 세상을 떠나고, 혜원과 엄마는 단둘이 시골 생활을 이어 나간다. 이제 겨우 초등학생이 된 혜원에게 엄마는 매일 요리를 알려주었다. 그러면서 자연의 이치, 타이밍의 중요성도 함께 전해주었다. 혜원이 수능을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혜원의 엄마는 편지를 남겨둔 채 집을 떠났다. 편지 속에는 온전히 자신을 위한 삶을 찾기 위해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일들을 하러 떠난다고 적혀 있었다. 혜원은 성인이 되어 서울로 상경하고, 대학을 졸업한 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 다시 고향으로 내려올 때까지 엄마를 원망했다. 오히려 이런 엄마를 단번에 이해하고 존중하는 자식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1년간의 고향살이를 엄마가 남겨준 요리 레시피들과 함께하며 성장한 혜원은 엄마를 이해하게 되었다. 엄마는 혜원이 뭐든 혼자 버텨낼 힘을 길러준 것이다. 일찍 남편을 떠나보내고 홀로 시골에서 어린 딸을 키워낸 혜원의 엄마는 힘든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 세월에는 혜원의 ‘엄마’만 있을 뿐 ‘자신’은 없었을 것이다. 이 글을 마무리 짓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리틀 포레스트에 대해 쓰면서 작은 숲을 찾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던 밴드 자우림의 보컬 김윤아의 콘서트에 갔다가 우연치 않게 또, 너무 오래 고민했던 시간이 무색하게도 그녀의 한마디에 답변을 찾았다. 내가 결론 내린 작은 숲은 나 자신이며, 내가 원하는 삶이다. 그런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 위로가 되고, 또 힘이 되고, 무기력을 이겨내는 방법이 되어줄 것이다. 어쩌면 나는 이 답변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혜원의 엄마가 가장 끌렸던 것 같다. 영화의 마지막은 “나도 나만의 작은 숲을 찾아야겠다.”는 혜원의 대사로 끝난다. 힘들 때마다 이 영화를 찾게 되는 건 마지막에 나오는 혜원의 이 대사가 듣고 싶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또 언제 다시 무기력에 먹혀버릴지 모른다. 그때마다 이 영화가 나 스스로를 다시 생각하게 해주고, 다시 일어나게 도와준다.
제 7 호 어쩌면 청춘은,
어쩌면 청춘은, 정지은 정기자 Prologue. 청춘(靑春), 새싹이 돋는 봄철, 스무 살 안팎의 젊은 나이 또는 그런 시절 여름날, 추적추적 기나긴 장마가 찾아왔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형형색색의 우산이 횡단보도를 장식하고, 달리는 차들의 헤드라이트는 빗물이 번져 거리를 물들인다. 나는 이 모습을 집 안에서 이불 속에 파묻혀 창문으로 지켜보길 좋아한다. 어릴 때는 웅덩이만 보면 머뭇거림 없이 첨-벙하고 뛰어들기 바빴는데, 요즘은 실내에 맞이하는 비가 가장 좋다. SNS를 보거나, 서점을 살펴보면 '청춘'에 관한 에세이나 글귀들이 참 많다. 살짝 들춰 읽어보기만 해도 괜스레 마음이 몽글몽글해지고, 어느 한순간을 떠올리게 만드는 매력적인 글이 한가득이다. 그렇다면 청춘이 도대체 뭐길래 우리는 이토록 그 시간을 소중히 하고, 청춘에 머무르려 하는 걸까. 어릴 적 떠올리던 ‘청춘’은 그저 언젠가 찾아오길 기다리며 두근거리던 먼 미래였다. 당시에는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다 하는 것만 같은 언니 오빠들이 부러웠고, 멋있었다. 마치 스무 살만 넘으면 영화 속 주인공이 될 것 같았달까. 그러나 사전상 청춘의 나이에 놓여있는 나는 상상했던 청춘과는 낭만과 성숙함이 한 스푼씩 부족한 것만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오히려 9살 시절의 나를 더 그리워하고 부러워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과연 지금 나의 청춘을 푸르게 잘 보내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내가 바라고 그려왔던 청춘의 모습이 맞는지 말이다. ‘새싹이 돋는 봄철’이라는 뜻의 청춘은 어떤 형태여야 하는 것일까. Ep1. 소박했던 여름나기 이상하게도 여름의 더운 공기와 초록빛으로 물든 나무들을 바라보면 어린 시절의 티 없이 맑았던 때가 떠오르곤 한다. 해가 쨍쨍하든, 비가 내리든 그 자체로 밖에 나가 뛰어놀기를 즐기던 그때 말이다. 그 시절의 우리는 분명 작은 것에도 설레고 행복해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기 바빴다. 개울가에서 놀다가 추워지면 햇볕에 뜨겁게 달궈진 바위에 누워 몸을 녹이고, 자전거를 타고 손끝으로 시원하게 바람을 가르며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고, 물놀이가 끝난 후에는 시원한 수박과 엄마표 떡볶이를 먹으며 허기를 달랬던 그 시절. 그때의 반짝였던 여름은 지금의 나에게는 그리운 추억이자 사진첩 속 가물가물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현재, 내가 맞이하는 여름은 어린 시절과는 한껏 다른 모습이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보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고, 더 다양한 감정을 알아차리는 게 가능하다. 그러나 한 가지, 지금의 나는 이전보다 단순하고 다채롭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에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재미있게 보낼 수 있을까 고민하며 눈을 뜨고, 오늘 있었던 기분 좋은 일들을 생각하며 잠들었다. 지금은 밀린 퀘스트를 달성하듯이 오늘 해야만 하는 것들을 머릿속으로 나열하며 잠에서 깨고, 오늘 몇 시간을 잘 수 있을지 계산해 알람을 맞추고 눈을 감는다. 어느 순간부터, 어릴 적에는 아무런 생각 없이 즐기던 것이 이제는 너무나도 멀게 느껴진다. 있는 그대로 만을 바라보던 그때와는 다르게 타인의 말과 행동을 파악하고, 나의 이익을 계산하기 바쁘다. 더 많은 자유를 누리고,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그만큼 내가 온전히 감당해야 하는 책임감 또한 늘어나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가끔은 그 단순하게 사고하고, 순수하게 즐기던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분명 청춘은 아름다운 것이지만, 어릴 적의 순수함과 소박함을 잃어가고 성숙함만이 그 자리를 채우는 듯한 아쉬움은 커져만 간다. Ep2. 누군가에게는 바다의 짭조름한 냄새가, 누군가에게는 맛있게 익은 옥수수의 구수한 냄새가 모두 ‘여름’하면 떠오르는 고유의 ‘여름 냄새’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시골에 살던 나였기에 유독 자연과 친했다. 나는 여름날을 생각하면 후덥지근한 공기 속 축축한 풀냄새와 아빠가 벌꿀을 수확할 때 나던 달달구리한 냄새가 콧잔등을 스친다. 한창 성장기에 놓여있는 아이들처럼 마당에 심어진 잔디도 여름 장마철만 지나면 쑥쑥 자라기 바빴다. 부모님을 도와주겠다며 잔디깎이로 잔디를 깎다가 숭덩숭덩 구멍이 나 있다며 애정이 섞인 잔소리를 들은 기억도 있다. 그 잔소리 속에도 나는 풀냄새가 참 좋았다. 날아다니는 벌이 무서우면서도 여름 한정으로 수확할 수 있는, 여러 종류 꿀이 합쳐진 잡화꿀 특유의 칼칼하면서도 달콤한 냄새에 이끌려 일하시는 아빠의 주변을 알짱거렸던 기억도 생생하다. '여름' 하면 어떤 이는 더위를 피해 들어간 주차장 속 특유의 냄새를, 어떤 이는 시원한 바다의 짭조름한 바람의 냄새를, 어떤 이는 매미 소리를 들으며 누군가와 함께 걷던 여름밤 길가의 냄새를 떠올릴 수 있다. 지금 이 글을 읽으며 각자에게 살며시 떠오를 모든 냄새가 모여 여름 냄새를 만들어내고, 그 냄새는 우리의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이처럼 여름의 냄새는 우리의 시간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냄새를 맡을 때마다 우리는 다시금 그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열정과 꿈으로 가득 찼던, 순수하고 빛났던 그 시절을 말이다. 그때는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고, 뭐든 상상할 수 있었다. 반면, 현재는 9살의 그때보다 현실적이고, 나 자신과의 더욱 타협적인 태도를 갖추게 되었다. 지금도 그때와 똑같은 여름 냄새를 맡을 수 있다. 그러나 덜 감상적이고, 덜 감성적이다. 그때는 여름이 주는 그 향기에 푹 빠지고자 했다면, 지금은 더위를 피해 하루라도 빨리 카페에 들어가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기 바쁘다. 아주 조금은 현실에 지쳐 마주하는 여름을 피하기만 하는 내 모습에 실망하기도 한다. Epilogue. 청춘의 진정한 의미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 없지만 또다시 찾아오는 누군갈 위해서 남겨두겠소.” 어쩌면 이런 아쉬움이 있기에 우리는 한 걸음 더 성장한 것은 아닐까. 이렇게 고민하는 과정 자체, 어린 시절의 내 모습과 지금의 내 모습을 비교하고 고민하는 자체가 우리가 마치 청춘의 한가운데에 놓여있다는 사실을 몸소 증명해 주고 있는 것 같다. 어린 시절 다채롭던 여름이 있었기에 청춘의 여름이 존재하고, 청춘의 여름에 이러한 고민을 하는 것은 어린 시절 여름의 기억을 더욱 소중히 만든다. 어린 시절의 여름이 지금의 프롤로그였다면, 지금의 여름은 먼 훗날의 새로운 프롤로그가 되지 않을까 하는 설렘이 함께 피어난다. 청춘을 가득 담은 잔나비의 노래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 없지만’의 가사처럼, 지나버린 우리들의 뜨거웠던 여름은 기억 속에 묻어두고, 새로이 찾아오는 청춘의 여름을 맞이할 준비를 해보는 건 어떨까. 분명 지금과도 똑같이 뜨거웠던 여름이지만 흘러간 시간과 추억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기에 다가올 여름도 소중히 보내다 보면 어느샌가 그 여름들이 쌓이고 쌓여 앞으로 만들어 갈 새로운 에피소드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긴다. ‘작전명 청-춘!’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우린 모두 타오르는 젊음이기에 흔들릴 수 있어. 그래 무너질 수 있어. 일어나라 작전명 청춘.’ 지금의 우리가 넘어지고 흔들리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 있다. 그러니 함부로 자책하지 말고 쉽게 지치지 않도록 하자. 늘 그래왔듯이 우리들의 일상은 기록으로는 남지 않더라도 기억 속에는 분명 고이 보관될 것이다. 어린 시절의 순수함과 아쉬웠던 기억을 잊지 말고, 새로 맞이할 앞으로의 여름을 후회 없이 보내보기로 다짐하며 글을 마친다. 여러분도 남은 여름을 청춘의 뜻처럼 푸르게 보내길 바란다. 어쩌면 청춘은, 여름.
제 7 호 ‘솔직함’의 가면을 쓴 ‘무례함’
‘솔직함’의 가면을 쓴 ‘무례함’ 정지은 정기자 구독자 318만 명을 자랑하던 인기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을 아는가. 이들의 구독자는 현재 292만 명으로 급감한 상태이다. 이들의 구독자 감소는 지난달 한 영상을 올리며 시작되었다. 해당 영상은 피식대학의 시리즈물 중 하나인 ‘메이드 인 경상도’의 영양 편이다. ‘메이드 인 경상도’는 피식대학 멤버들이 돌아다니며 경상도 지역 곳곳을 소개하는 여행 콘텐츠인데, 영양 편에서 멤버들의 영양을 무시하는 듯한 발언이 지역 비하로 논란이 되고 말았다. 그들은 경북 영양에 대해 인구수가 1만 5천 명이라며, "100세 이상 인구가 가장 많은" 장수 마을이라고 소개했고, 이에 한 멤버는 "이런 지역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냐?"며 "여기 중국 아니냐?"고 말했다. 또한, 한 식당의 메뉴가 너무 특색이 없다고 말하며, 아무리 그들의 개그를 즐기던 사람들이더라도 눈살을 찡그리게 만들었다. 피식대학을 즐겨보던 사람들조차 이번 영상에는 유독 어딘가의 아슬아슬한 불편함을 느꼈다는 피드백을 남겼다. 피식대학의 방문에 영양 공무원들은 지역 홍보를 기대하던 상황임에도, “내가 공무원인데 여기 발령받으면... 여기까지만 할게.”라며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이들이 잠깐이나마 영상에서 보인 이러한 태도에 사람들은 ‘무례하다.’는 평을 내렸고, 그 평가는 26만 명의 구독자 감소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솔직하고 소탈한 개그를 하여 유쾌함을 주었던 그들의 개그이지만, 이번에는 ‘선’을 지키지 못했다. 그들을 두둔하는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그저 자신들이 느낀 바를 가감 없이 솔직하게 말한 것이 왜 잘못이냐고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평가’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영상 속에서 느껴진 멤버들의 지역을 바라보는 시선과 해당 영상으로 하여 주민들이 느낀 불편함과 멋쩍음이라는 ‘결과’에 집중해야 한다. 분명 그들의 아이디어로 충분히 유머러스하고 자연스럽게 녹여낼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그 순간의 언행만큼은 솔직함이 아니었다. 솔직함을 가장한 무례함이었을 뿐이다. ‘솔직함’과 ‘무례함’ 그 경계는 과연 어디쯤 있을까. “내가 이렇게 말하는 건 정말 너를 위해서야. 친구로서 솔직하게 말하는 거니까 오해하지 않길 바라.” “사람은 누구나 솔직해야 해. 솔직한 사람은 매력적이야.”라는 말은 살면서 한 번쯤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누군가 상처를 받을까 돌려서 이야기하다가 제대로 원하는 바를 전달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솔직하게 이야기하며 명확히 전달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다. 필자 또한 성격상, “에둘러 말하지 말고, 그냥 얘기해.”라는 말을 들어 온 사람으로서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들의 당당함과 거침없음을 배우고 싶다고 생각해 왔다. 어렵지만 이에 대해 실제로도 많이 노력하고 있다. 요즘 유행하는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사랑받는 캐릭터들은 모두 ‘솔직하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매력을 느낀다. 돌려서 말하다가 괜한 오해를 사는 것보다,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하여 헷갈림 없이 마음을 전달하는 것에, 일명 ‘사이다’를 느껴 대리 만족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남이 상처받을까, 혹은 자신이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속을 숨기는 태도는 대입하여 생각해 보면 충분히 이해는 된다. 그러나 내부 상황을 모르는 객관적인 시청자의 시선에서는 그저 답답하기도 하고 비겁한 태도로 느껴짐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자신의 마음을 숨김없이 공개하는 것이 솔직한 것일까? 상대의 감정을 고려하기보다, 거짓됨 없이 온전하게 마음을 전달하는 것은 과연 솔직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일까? ‘솔직하지 않음’과 ‘거짓말’은 같다고 볼 수 있는 것일까?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우리 주위를 둘러봐도 솔직함이라는 가면으로 무례함을 숨겨 말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굳이 안 해도 될 말임에도, 이 말을 하지 않으면 마치 자신이 거짓말이라도 하는 것 같은 간질거림을 핑계로 말하는 것이다. 솔직함과 무례함의 기준을 감히 단정 짓기는 어렵다. 다만, 사전에만 따르더라도 ‘솔직(率直)함’은 거짓이나 숨김이 없이 바르고 곧은 것을 이야기한다. 그저 꾸밈없이 자신의 속마음을 담백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반면에 ‘무례(無禮)함’은 단어 그대로 태도나 말에 예의가 없는 것. 고로 타인의 잘못을 들춰내고, 자신의 의견만 내세우는 것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솔직함과 무례함의 차이는 종이 한 장처럼 얇은 경계에 놓여있다고 느껴진다. 분명 두 단어 모두 언행을 기반으로 나타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것은 긍정적이고, 어떤 것은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솔직함의 선을 넘어 뾰족함을 건넨다면 누군가는 상처를 받고, 이 선을 넘지 않고 마음을 잘 전달한다면 진정한 소통이 가능해진다. 솔직함은 자신의 진심 어린 감정을 전달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반면, 무례함은 자신만을 생각하며, 타인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는 무방비한 언행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이렇듯 자신의 감정만 내세우게 된다면 우리는 관계를 얕게 만들 수밖에 없다. “이 세상의 사람들 중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단지, 하고 싶지 않아서 하지 않을 뿐. 다들 상대에게 무례하지 않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괜찮다고 아무렇지 않은 것은 아니다> 中 기술의 발달은 사람들이 익명으로 쉽게 생각을 남길 수 있게 만들었고, 공감을 누르는 터치 한 번으로 나의 호불호를 나타낼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시대가 흐를수록, 많은 사람이 각자의 생각을 오랜 시간 거치지 않고 곧바로 표현하는 경향이 늘어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 것 같다. 그 속에서 우리는 무례함이 당연한 것이 되지 않도록 균형을 잡으며 살아가야 한다. 자연스럽게 본인의 선호도와 의견은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내뱉기 전, 자신의 언행이 누군가에게 불편함을 주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솔직해. 나는 그냥 그런 사람이야.”라며 자기 자신을 합리화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보자. 혹여 솔직하지 않은 건 모두 가식이고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고 있진 않았는가. 필자도 스스로 돌아보았다. ‘솔직함’의 태도를 갖추기로 마음을 먹고, 때로 아무 생각 없이 웃음을 위해 이야기들을 내뱉다가도 어느 순간부터는 괜한 이야기를 한 것 같다는 생각에 후회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대화 내부에 속해있는 누군가의 표정을 보면 내 말이 미친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지 눈치가 있다면 대강 짐작이 가능하다. 그 순간부터는 내가 한 말이 혹시나 그들에게 불편함으로 다가오진 않았을지, 저 표정 너머에는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를 생각하고 신경 쓰게 된다. 이는 마음이 불편하고 더욱 언행에 주의해야겠다고 집에 돌아가 늘 반성하고 다짐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솔직함은 분명 웃음과 재미를 줄 수 있다. 남에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생각에 스스로 마음이 편해질 수도 있고, 상대로 하여 어색하던 벽이 허물어지고 더욱 친해진 것 같다는 생각을 들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장점이 있는 ‘솔직함’임에도 남을 배려하지 않는다면, 이는 ‘무례함’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누군가에게는 불편함과 어색함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상대는 이---만큼의 먼 거리라고 느끼고 있는데, 선뜻 가까워진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솔직함을 가장한 무례함’에 더욱 부담을 느끼게 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솔직함과 무례함의 경계를 알고, 내 마음을 건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심적 여유를 가지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내가 기분이 나쁘면, 상대도 충분히 기분 나쁠 여지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늘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돌아보고 대화를 할 때 적당한 선을 지키며, 자신의 마음을 꾸밈없이 솔직하고 예쁘게 말할 수만 있다면 상대가 헷갈리는 상황도, 누군가가 기분 나쁜 상황도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누군가와 대화할 때, 그 상대가 아무리 친한 사이라 하더라도 늘 존중하고 배려하는 태도를 지니고 솔직해지기로 스스로 되뇌어보는 것은 어떨까. 정다연, <피식대학, 논란 이후 결국 ‘영상 올스톱’>, 스포츠월드, 2024.06.25. https://www.sportsworldi.com/newsView/20240625513608 양아라, <'피식대학' 이용주·김민수·정재형이 경북 영양서 선 넘는 무례한 말 남발했는데 논란 이후 그들이 보여준 행동에 할 말을 잃게 된다>, 허프포스트코리아, 2024.05.17. https://www.huffingtonpost.kr/news/articleView.html?idxno=220205 홍현태, <괜찮다고 아무렇지 않은 것은 아니다>, 딥앤와이드, 2022.04.28.
제 7 호 퍼스널 OO, 관심 있으세요?
퍼스널 OO, 관심 있으세요? 이선민 정기자 패션이나 뷰티에 관심이 있다면, 한 번쯤 퍼스널 OO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거다. OO는 무엇일까? 빈칸에는 무엇이든 들어갈 수 있다. 우리가 아는 퍼스널 컬러, 퍼스널 골격, 퍼스널 헤어…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건 아무래도 퍼스널 컬러다. 우리가 퍼스널-에 왜 관심을 가지게 되는 건가를 생각해 보면 이유는 간단하다. 유행에 흘러가기보다 나만의 독특한 스타일과 개성을 찾고 싶어 하는 욕구가 커졌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내게 꼭 맞는 것을 선택하고 싶다는 목적 때문일 것이다. 솔직히 같은 화장품이라도 어울리는 사람이 다르고, 남에겐 별로인데 나한테는 잘 어울릴 수도 있지 않은가. 물론 유행을 따라가면 크게 고민하지 않고도 패션 아이템을 소비할 수 있다. 대신 길가에서 나와 똑같은 옷, 가방, 신발 등을 신은 사람들을 정말 눈에 띄게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나도 요즘 유행하는 신발이라 구매해서 신고 나갔더니, 거짓말 조금 보태서 똑같은 신발을 신은 사람을 하루에 10명도 더 보고 민망했던 경험이 있다. ‘퍼스널’은 남들과 똑같은 모습이 아닌 나에게 어울리는 것을 찾기 위한 사람들에게 유용한 하나의 자기 개발 수단으로서 사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23년 한 업체의 뉴스 기사를 보면 “실제로 패션·뷰티 제품을 구매할 때 퍼스널 컬러를 고려한다는 소비자 비율을 보면 한국 54.4%, 미국 59.6%, 일본 54.9% 등 절반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셀프 퍼스널 검사가 가능하고 관련 제품을 추천하는 어플, 잼페이스의 퍼스널 컬러 관련 검색량도 2021년 8월부터 2022년 8월까지 322% 증가했다.”라는 내용을 알 수 있다.[1] 그만큼 현재 퍼스널-에 대한 관심과 선호도가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이번 기사에서는 모두에게 익숙한 ‘퍼스널 컬러’를 예로 들어서 자연스럽게 퍼스널에 과몰입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묘사해 보고자 한다. 1. 퍼스널 컬러: “컬러는 우리 스스로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색채를 찾아내는 개인별 컬러 진단 시스템” 언제부터 한국에서 퍼스널 컬러가 사용되기 시작됐을까? 네이버에서 ‘퍼스널 컬러 진단’이라는 키워드로 검색 시, 가장 오래된 기사는 2005년 12월 05일에 작성된 [전문가가 말하는 ‘면접 때 내게 맞는 색채 고르기와 코디법’]이다. 위 사례는 면접 때 첫 인상이 중요하다는 점을 기준으로 나에게 더 잘 어울리는 색채와 코디 방법을 알려주었다. 이렇게 퍼스널 컬러는 생각보다 한국에 오랜 기간 사용되었다. 하지만 대중들이 유행처럼 인지하게 된 시기는 불과 10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2010년쯤 패션 뷰티 관련 블로거들, 유튜버들이 1인 미디어로 등장하면서 전문가 용어였던 ‘퍼스널컬러’가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한다.[2] SNS와 같은 매체가 발달함에 따라 사람들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나에게 맞는 색깔’에 대해 궁금해하고 시도해 보기 시작했다. 2. 나도 해봤어, 퍼스널 컬러 검사. 나도 퍼스널 컬러 검사를 받아본 적이 있다. 검사를 받을 당시인 2023년에는 퍼스널 컬러에 대한 유행이 약간은 시들했지만,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듯이 인스타그램, 유튜브만 봐도 관련 콘텐츠가 다수 소비되고 있었다. 퍼스널 컬러 검사 당시에는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맨얼굴에 하얀색 천으로 머리색을 가리고, 일명 드래프트라는 천을 얼굴 밑에 대어 변화하는 얼굴의 안색을 비교하며 나에게 잘 어울리는 색을 찾아가는 과정을 거쳤다. 함께 간 친구가 담당 선생님과 함께 A 색은 잘 어울리고 B 색은 별로야 라고, 말해주는데, 솔직히 내 눈엔 큰 차이가 보이지 않았다. 단지 전문가인 선생님이 진단해 주신 거니까 내 눈보다 훨씬 믿음직하고 신뢰성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당시 ‘겨울 쿨 딥톤’을 진단받았다. 겨울 쿨 톤 중에서도 어두운 계열, 예를 들자면 검은색과 남색이 잘 어울리는 무게감 있는 분위기에 톤이라고 해 주셨다. 검사 후에는 나에게 어울리는 옷과 화장품을 선택하는데 수월함이 생겼다. 이미 일차적으로 범주가 좁혀졌기 때문에 크게 고민하지 않고 디자인 위주로 구매했다. 내가 색상에 대해 고민했던 시간을 디자인과 소재를 비교하는데 시간을 좀 더 할애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퍼스널 컬러를 통해 나에 대해 한층 더 알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어 만족감은 올라갔다. 추가로 요즘 또 SNS에 보이는 ‘퍼스널 헤어’에 도전해 봐야 하나 라는 생각도 갖게 되었다. 하지만 문득 이런 의문이 생겼다. 개인의 매력을 살리기 위한 퍼스널 컬러, 사실은 유행에 따라가는 건 아니냐고. 떠올려 보자. 퍼스널 컬러, 남들이 다 하니까 나도 한 번 해볼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 적이 있진 않았는지. SNS에 관련 게시물이 올라올 때마다 나는 어떤 쪽에 속할까 하고 셀프 검사도 해본 사람도 분명히 있다. 나도 그랬다. 물론 퍼스널 컬러처럼 ‘퍼스널’의 취지는 좋다고 본다. 왜냐하면 내가 직접 판단할 때는 놓치고 인지하지 못한 부분을 전문가의 도움을 찾는다면, 효율적인 시간 사용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3. 잠시만. 퍼스널 컬러가 전부일까? ‘퍼스널’에 대한 몰입이 오히려 스스로에게 제약을 준다고 생각한다. 화장품을 예시로 들어보자면, 퍼스널 컬러 검사 당시 사실 선생님이 추천해 준 립스틱 색상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함께 간 친구와 선생님의 의견은 달랐다. 너무나 잘 어울린다는 것이다. 기분이 이상했다. 남들이 어울린다고 하니까 꼭 내가 이 색상이 어울려야 할 것 같고, 꼭 그 색이 어울리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후로 옷을 고를 때도 나도 모르게 입에 붙은 말이 생겼다. “겨울 쿨톤인 나에게 이 색상은 웜톤이라 안 어울려”라고 옷을 입어 보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말이 나왔다. 나에게 어울리는 개성을 찾기 위해 퍼스널 컬러 검사를 했음에도 오히려 나를 ‘그 퍼스널 컬러’에 가두고 남들과 같이 획일화를 시키려고 하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색상에 대한 선입견으로 인해 안전하게 가려는 선택을 고수하게 되었는지, 톤에 상관없이 다양한 색상을 도전하지 않고 이렇게 간단하게 나에게 어울리는, 개성을 정의 내릴 수 있는 건지에 대해 고민 하게 되었다. 그와 더불어 내가 퍼스널 컬러에 대한 마케팅 전략에 넘어간 것은 아닌가? 라는 의구심도 갖게 되었다. 사실 블로그에 있는 퍼스널 컬러 후기를 봐도, 자신의 톤에 맞는 새로운 화장품을 다시 구매하는 경우가 존재한다. 나도 바로 드럭스토어인 ‘올리브영’에 가서 추천받은 화장품을 샀던 기억이 있다. 어떻게 알았는지 ‘쿨톤 추천’, ‘웜톤 추천’이라는 문구가 걸린 추천 화장품들도 내 눈을 사로잡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립스틱의 어떤 색상을 구매할지 고민이 될 땐, 화장품 위에 붙여진 ‘추천’ 색상을 망설임 없이 고르기도 한다. 당연히 내가 그 ‘추천’ 색상에 어울릴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4. 생각보다 너는 너를 몰라.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좋을까? 하고 질문을 던질 수 있다. 퍼스널- 자체를 온전히 신뢰하는 것보다는 참고하여 사용하는 것이 어떨까 한다. 사실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다. ‘퍼스널-‘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긍정적인 영향을 간과할 수는 없다. 의외로 취업 박람회에서도 취업 상담 및 지원서 제출의 기회뿐만 아니라 노무상담, 면접 메이크업, 퍼스널컬러 진단, 지문적성검사 등 취업에 필요한 프로그램을 제공했다고 한다.[3] 퍼스널 컬러를 이용해 면접에서 내가 어필하고자 하고 나에게 어울리는 이미지를 메이킹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참고할 수 있다. 이렇게 퍼스널 컬러를 이용하여 나의 장점을 더욱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가 망설임 없이 퍼스널-을 선택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나의 개성을 해치지 않고 퍼스널 컬러를 참고할 수 있는 ‘적절한 선’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굳이 그 선을 찾는 데 필요한 것이 퍼스널-이 전부일까? 차라리 이번기회에 나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외부적 요인에 나를 맞추려고 하기보다는 나는 누구인지, 나의 모습은 무엇인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등 다양한 질문들을 나 스스로에게 던져보고 나를 알아보자. 그러면 내면의 ‘나’에게 집중하게 되고 외부적인 요인은 나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참고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자료] 1. 유미란 칼럼리스트, [소곤소곤 컬러이야기] 컬러를 활용한 이미지 변신! 퍼스널컬러 유행의 시작은?, 경인종합일보, 2021.04.12, https://www.jonghap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16670 2. 최영권 기자, NYT도 주목한 “美 퍼스널 컬러 진단 열풍”, 서울신문, 2024.04.18, https://www.seoul.co.kr/news/international/2024/04/08/20240408500076?wlog_tag3=naver 3. 박지연 기자, “색(色)은 삶의 질을 높여주는 공기 같아요”, 고대신문, 2023.05.22, https://www.kunews.ac.kr/news/articleView.html?idxno=40988 [1] 김효혜/정슬기 기자, 퍼스널컬러 찾는 MZ … 화장품 초개인화 시대, 매일경제, 2023.06.26, https://www.mk.co.kr/news/business/10769569 [2] 정가람 기자, '퍼스널 컬러' 찾아주는 컨설턴트, 그녀의 '예쁜' 이야기, 2018.03.08, https://www.sedaily.com/NewsView/1RWWGDQHRT [3] 의왕시 취업박람회 성황리 개최..."500여명 면접 참여", 뉴스핌, 24.05.10, https://www.newspim.com/news/view/20240510000246
제 7 호 기후동행카드 vs. K패스: 친기후 정책, 통합이 해답이다
기후동행카드 vs. K패스: 친기후 정책, 통합이 해답이다 안희주 수습기자 기후동행카드, 교통비 절약의 길로 기대 109,550원. 지난 개강 첫 달 교통비였다. 아침마다 버스, 1호선, 다시 버스를 타며 통학을 한다. 난 후불 교통카드를 사용해 월급날, 월급이 통장에 들어오자 마자 교통비가 빠져나간다. 매일매일 통학이나 출퇴근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교통비’가 큰 부담이 될 것이다. 그래서 올해 초부터 시행된 기후동행카드 사업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다. 기후동행카드란 1회 6만원대의 요금충전으로 한달간 대중교통과 따릉이를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정기권이다. 사실 이 기후동행카드의 모티브는 독일의 49유로 티켓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독일의 연방정부는 물가 상승으로 인한 시민들의 부담을 줄여주고, 기후보호라는 중요한 목표를 위한 에너지 감소를 위한 정책으로 9유로 티켓을 도입하였다. 3개월 간의 시범운행 후 운송회사협회는 9유로 티켓을 통해 탄소배출량이 한 달에 60만t 감소되는 효과가 있었다고 발표했다. 이후 재정상 운영을 가능케 하도록 49유로로 가격을 인상하여 한달동안 전국의 지하철, 버스와 같은 근거리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게 하였다. 서울시는 기후동행카드 도입으로 연간 13000대 가량의 승용차 이용이 감소, 연 32000톤의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약 50만명의 시민이 1인당 연간 34만원 이상의 할인 혜택을 받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주중 승용차로 출·퇴근하거나 주말에 승용차를 이용하던 사람이 ‘대중교통’으로 수단을 전환하는 모든 경우를 포함한 수치다.) 그리고 서울시의 집계에 따르면 출시 한달만에 약 46만 장이 팔리고 품귀 현상이 일어나는 등 많은 사람들과 관심과 호응을 얻고 있다. 교통비만이 대중교통의 문제일까 하지만 많은 관심을 얻었다고 기대 효과를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서울시의 사업소개 문구에서 알 수 있듯이 이름부터 ‘기후동행’인 이 정책은 위에 언급한 것처럼 친기후 정책이다. 자차 이용자들이 대중교통으로 갈아타야 기대효과가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진의 통계에 따르면, 주로 자차를 이용하는 4-50대 중장년층의 비율은 원래부터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있던 2-30대들보다 현저히 낮다. 이는 정책의 효과가 예상보다 미미할 수 있음을 나타낸다. 사진출처 : 매일경제 서울시의 모순적인 정책 시행 또한 문제이다. 최근 서울시는 승용차 친화 정책을 내놓고 있다. 남산터널 외곽방향 통행료 무료와 주요도심 월 정기권 주차권 요금 할인 같은 정책을 펼쳤다. 자차 사용을 줄이고 대중교통 이용률을 높이겠다는 기후동행카드 정책의 요지와 맞지 않는 정책을 동시에 시행하고 있는 것이다. 고준호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 또한 “승용차 이용자에게 편의를 주는 정책은 기후동행카드 정책 효과를 반감시킨다”고 지적하였다. 사진 출처 : 조선일보 이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후동행카드 외에도 대중교통 이용을 장려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중장년층의 경우, 이동의 편리성이나 시간 절약, 접근성 등으로 인해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의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대중교통 시스템의 개선이 필요하다. 기후와 ‘동행’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큰 문제는 서울이라는 사용 범위이다. 기후동행카드의 서비스 범위는 ① 서울 지역 내 지하철 + 김포골드라인 ② 서울시 면허 시내, 마을버스(심야버스 포함) 3 따릉이 이다. 서울로 통학하고 출퇴근하는 인구 중 다수는 경기도민일 것이다. 나 또한 경기도에 살지만 서울로 통학하고 있다. 하지만 기후동행카드는 경기에서는 사용할 수 없고, 버스 노선 또한 매번 확인해야하는 불편함이 존재하여 사용하지 않았다. 실제로 서울-경기도 구간에서 사용률은 같은 구간 교통카드 사용률의 1.6%에 불과할 정도로 저조하다. 이는 당연히 친기후라는 정책의 요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나타난 정책이 K패스이다. K패스란 대중교통을 월 15회 이상 이용 시 교통비의 일정비율을 환급해주는 제도이다. 하지만 K패스의 지향점은 친기후가 아닌 듯 보인다. 당초 서울시는 기후동행카드 출시 전, 경기도와 주변 지자체들에게 업무협약을 요구했다. 경기도는 경기패스 정책만을 생각하며 이를 거절하였고 현재는 인천광역시, 김포시, 군포시, 과천시, 고양시, 하남시만 서울시와 협약을 맺은 상태이다. 이에 따라 자연스레 서울시와 경기도 간, 기후동행카드와 K패스 허용 범위와 사용량에 대하여 경쟁, 기싸움이 이어졌다. 그렇다면 기후동행카드와 K패스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가 아닌 경쟁적인 관계가 아닌지, 과연 이 관계가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한 우려가 생긴다. 물론 경쟁관계로도 서로 보완해 나가고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월정액 금액을 감소시키거나, 적립률을 높이는 방식을 택하게 되면 지금보다 작은 동기로도 대중교통으로 이동 수단을 전환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결국 ‘경제’라는 요지를 강조한 경쟁으로, ‘기후’라는 요지를 잃어버리게 된다.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두 정책의 차이점이 많아질수록 혼란스러워지기만 한다. 박재홍 고려대학교 정책학과 교수는 "소비자들이 여러 프로그램의 차이점을 이해하고 선택하는 과정에서 혼란을 겪을 수 있으며, 이는 참여율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언급하며, "정책의 일관성 부족은 소비자의 신뢰를 저하시킬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소비자들의 번거로움 증가는 참여율 감소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기후동행카드와 K패스의 통합 기후동행카드와 K패스는 대중교통 이용을 장려하여 온실가스 감축을 목표로 하는 ‘친기후’ 정책의 일환으로 도입되었다. 이러한 정책은 대중교통 이용을 촉진함으로써 자동차 운행을 줄이고, 이를 통해 온실가스 배출을 감소시키려는 중요한 기대효과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현재 두 정책이 서로 상충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면서 기대했던 효과를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강혜규 복지행정연구실 연구위원은 ‘사업 간의 유사성·중복성은 업무의 중복성, 분절성, 비효율성의 문제와 함께 사업의 복잡성으로 인하여 수요자의 서비스 이용 접근성과 체감도 저하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이를 최소화하기 위한 작업이 요청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 말을 근거로, 이는 현재 기후동행카드와 K패스가 통합되지 않은 채로 존재하면서, 정책의 일관성 부족이 오히려 '친기후' 정책의 목표 달성에 방해가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친기후’ 정책의 기대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기후동행카드와 K패스는 하나의 통합된 체계로 발전할 필요가 있다. 기후동행카드를 사용하여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마일리지를 적립하고, 이 마일리지를 다양한 곳에서 사용하거나 다음 달 월정액에서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방식으로 통합한다면, 더 많은 시민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도록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타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할인율을 개선함으로써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고, 궁극적으로 '친기후' 정책의 목표인 온실가스 감축을 더욱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2024년 8월, 기후동행카드와 K패스가 시행된 지 약 6개월이 지난 현재, 두 정책 간의 경쟁으로 인한 사용자 혼란은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혼란을 없애고 ‘친기후’ 정책의 기대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두 정책의 통합 필요성을 고려해야 할 시점이다. [참고문헌] 1. 김계연, '기후동행카드 모델' 독일 D티켓 가격 동결, 연합뉴스, 2024.01.24 https://www.yna.co.kr/view/AKR20240124003200082 2. 정다은, [신문 읽어주는 교수님] 서울시 무제한 교통 패스 '기후동행카드', 이름에 숨겨진 뜻은?, 한양뉴스포털, 2024.03.07 https://www.newshyu.com/news/articleView.html?idxno=1013399 3. 손가윤, ‘동행’하는 ‘기후동행카드’가 되려면, 서울대뉴스, 2024. 03.03 https://www.sn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2820 4. 서울특별시 기후동행카드 시범사업 소개, 2024.04.26 https://news.seoul.go.kr/traffic/archives/510651?listPage=1&s=%EA%B8%B0%ED%9B%84%EB%8F%99%ED%96%89%EC%B9%B4%EB%93%9C 5. 이지안, 불티나는 기후동행카드, 문제는 '기후', 매일경제, 2024.02.12 https://www.mk.co.kr/news/society/10940983 6. K패스 홈페이지 K패스 사업 소개 https://korea-pass.kr/info/intro.do 7. 김용완, 15일부터 남산터널 혼잡통행료 도심 방향만 징수∙∙∙ 중구 주민 ‘반발’, 조선일보, 2024.01.15 https://www.chosun.com/special/special_section/2024/01/15/GAGQUKIIZBHGBEWYKWQHYERFNA/ 8. 권혜정, '기후동행카드' vs 'K-패스' 경쟁 본격화…나에게 맞는 카드는, 뉴스1, 2024.04.28 https://www.news1.kr/articles/?5398397 9. 임명수, 기후동행카드 수도권 확대 놓고 서울·경기 '기싸움'...전문가 "지하철부터 해야", 한국일보, 2024.03.05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30416020000464 10. 한국보건사회연구원 https://repository.kihasa.re.kr/bitstream/201002/14329/3/%EC%9D%B4%EC%8A%88%EC%95%A4%ED%8F%AC%EC%BB%A4%EC%8A%A4.2015.N0292.pdf
제 7 호 보통의 행복
보통의 행복 송지민 정기자 끼익… 쿵. 그냥 잠깐만 눈 감고 있으면 돼. 그냥 잠깐만 자는 척하면 돼. 그냥 잠깐만… 그럼 금방 끝나. 몇 개월 전, 나와 내 동생은 고모네로 들어왔다. 고모와 고모부는 따뜻한 분들이셨다. 그 집에는 사촌 오빠가 한 명 있었고, 오빠의 역할은 철부지 아들인 듯했다. 우리에게는 작은 방 하나가 내어졌고, 그곳에는 어린이를 위한 어쩌고의 책들이 가득 찬 책장과 당시 여자아이들에게 인기가 좋았던 실바니안 인형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밥 먹을 시간이 되면 언제나 우리가 좋아하는 반찬이 식탁에 놓여 있었고, 주말이면 다양한 테마파크에 데려가서 놀아주는 그 집이 나는 꽤 마음에 들었다. 아빠와는 자주 만났다. 아빠는 우리를 위해 밤낮 구분 없이 열심히 일하는 듯하였고, 그 덕에 우리는 사고 싶은 것, 배우고 싶은 것 상관없이 모두 할 수 있었다. 아빠를 만날 때면 눈빛에서 미안함과 사랑함이 느껴져, 떨어져 사는 것쯤이야 하나도 서운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 집에서의 생활에 안심하며 이 정도면 행복하다고 생각할 때쯤, 불행이 찾아왔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나와 내 동생은 작은 방에서 자고 있었고, 잠자리에 예민했던 나는 바로 알 수 있었다. 누가 들어왔다. 문이 열리는 소리였고, 지금은 내가 뒤척여서 가만히 있지만 분명히 누가 들어왔다. 나는 고모가 우리가 잘 자고 있는지 잠깐 확인하러 들어온 줄 알고는, ‘고모, 왜?’라며 깜깜한 어둠 속에서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고, 나는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잠에 들었다. 착각이 아니었다. 며칠 후, 다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가만히 있었다. 처음에는 무슨 일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단지 사촌오빠가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그렇기에 고모와 고모부 몰래 나를 괴롭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느낄 수 있었다. 이건 말하면 안 될 것 같다는 것을, 내가 말함과 동시에 이 집에서의 안정감이 깨질 거라는 것을. 아픈 건 참을 수 있었다. 나는 원래 주사도 잘 맞았고, 치과에서도 절대로 운 적이 없으니까. 나는 꽤 용감했고, 나와 내 동생은 더 이상 갈 곳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나는 더 용감해질 수밖에 없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던 부분은, 매일 그런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나와 내 동생 둘 중 한 명이라도 잠에서 깨면 안 되니까 조심하는 듯했다. 이렇게 조금의 안심이라도 한 게 화근이었을까. 똑같이 문이 열리고 잠깐의 정적 뒤에 나기 시작하는 미세한 발자국 소리는 어딘가 이상했다. 나에게 오는 것이 아니었다. 심장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혹시 어두운 탓에 나를 못 알아보나 싶어 이불을 걷어차 나와 동생의 키 차이를 보여줬다. 그럼에도 미동 없는 듯한 모습에 생각했다. 오늘은 내가 아니구나. 심장이 너무 뛰어서 숨이 가빠진 탓에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지만, 일단 오빠를 멈춰 세우기 위해 잠에서 깨고 있는 척을 했다. 계속해서 뒤척이며 웅얼웅얼 해대자 조금 뒤에 문이 열렸다가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지금까지 참고 있는 줄도 몰랐던 눈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렇게 긴 밤을 보내며 생각한 끝에 나는 결정을 내렸다. 다음 날 아침이 밝았고, 나는 아침밥을 먹으며 고모한테 말했다. 나 이제 방 혼자 쓸래, 얘랑 같이 쓰기 싫어. 동생은 서운해 보이는 듯한 얼굴을 했지만 어쩔 수 있는 도리가 없었다. 고모는 다정한 말과 함께 몇 번 나를 설득했지만 나의 완강한 태도에 사춘기가 일찍 왔나 싶어 끝내 수긍해주었다. 그렇게 동생은 나한테 크게 삐져 며칠간 심술을 냈지만 고모와 함께 잘 수 있게 되었고, 나는 그걸로 되었다. 그 이후부터는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냥 비슷한 날들의 연속이었고, 나는 그런 조용한 불행에 익숙해져 갔다. 조금 더 커서 내가 겪은 것들이 무슨 일이었는지 알게 되었을 즈음에는 내 안에 자기혐오라는 싹이 자라나고 있었고, 무수하게 긴 밤 동안 너무 많은 물을 주었는지 깊게 뿌리를 내렸다. 나는 내가 깨끗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생각과 함께 언젠가부터 하루에 서너 번의 샤워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면 씻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건지, 까슬까슬한 타월로 살갗이 다 벗겨질 때까지 계속했지만 통증은 느끼지 못했다. 그래, 통증이 필요했다. 그게 몸이든 마음이든. 모든 것에 대한 화살을 나에게로 돌렸다. 내가 말을 잘 안 들은 탓에 엄마와 아빠가 헤어졌고, 그로 인해 이렇게 된 것이다. 밤이 늦도록 오지 않는 엄마한테 귀찮게 전화하지 말걸. 기다리지 말고 자고 있으라 할 때 그 말을 잘 들을걸. 아빠한테 전화해서 엄마가 아직도 오지 않았다고 아빠는 언제 오냐며 보채지 말걸. 둘이 싸우던 그날, 자는 척하지 않고 말리기라도 할 걸. 그냥 내가 미안하다고, 씩씩하게 잘 지내겠다고 말할걸. 다 나 때문이다.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아서 이렇게 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것의 퍼즐이 맞춰지는 듯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영문도 모르는 이 불행을 탓할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러, 새로운 흉터가 생겼다 옅어지기를 반복하던 어느 날,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내게 위로를 건넸다. 다닌 지 그리 오래되지도 않은 수학학원의 선생님이셨는데, 정말 뜬금없이 지나가는 듯한 말로 “힘든 일 있으면 말해, 선생님이 다 도와줄게.”라는 것이었다. 수업이 끝난 뒤에 독서실로 가서 생각했다. 나는 분명 여느 날과 다름없이 웃음을 잃지 않았었다. 작은 농담에도 잘 웃어 보였는데…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그 혼란도 잠시, 공책 위로 뚝뚝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자기가 뭘 어떻게 해줄 건데, 이제 와서 뭘 어떻게’와 같이 꼬인 생각들도 잠시 하긴 했지만, 그보다 더 크게 든 생각은 이런 나라도 위로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것이었다. 난생처음 받아 본 위로였다. 그렇기에 진심이든 아니든 상관없었다. 물론 나는 선생님께 실제로 말하진 않았지만, 머릿속에서는 모든 것을 말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선생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셨다. 그러고는 내 잘못이 아니라고 하셨다. 어쩌면 그토록 듣고 싶은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그동안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이유는, 나는 미워할 사람이 필요했고 미운 만큼 실제로 괴롭힐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으니까. 그리고 내가 나를 위로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정말 내 잘못이 아니라면…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그게 맞다고 확인받고 싶었으니까. 그런데 이제 되었다. 비록 상상일 뿐이었지만 그 덕에 나는 그날 밤 잠에 드는 것이 무섭지 않았고, 오랜만에 조금 행복했다. 불행과 행복의 총량은 정해져 있는 걸까. 그 뒤로 나는 감사하게도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아빠는 재혼을 했고, 나에게는 다정한 엄마와 사랑스러운 막내 동생이 생겼다. 또, 가끔 주말 저녁에 만나 맥주 한잔하며 편하게 수다 떨 수 있는 친구들도 있고, 아무 말 없이 바라보기만 해도 좋은 남자 친구도 있다. 그런데, 이들과 지내다 보면 가끔 내가 지금 너무 행복한가 싶은 생각이 들어 무서워질 때가 있다. 행복이 다 채워져 또다시 불행이 찾아올까 봐. 그래서 습관처럼 스스로를 우울하게 만드는 시기가 있는데, 그간의 날들을 다시금 생각하며 저 밑으로 내려가는 것이다. 결코 나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만둘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게 내가 나의 행복을 안전하게 지키는 방법이니까. 그래야 안심이 되니까. 나는 앞으로도 지금처럼, 딱 보통만큼만 행복하고 싶다.
제 7 호 X
X 송지민 정기자 # D-276 늦은 저녁을 먹고 산책하면서, 너와 나는 서로의 집 앞 벚꽃이 더 예쁘다는 말장난 끝에 내년을 약속하고서는 우리가 되었지. 나도 산책을 꽤나 좋아하지만 너는 따라갈 수가 없더라. 어떻게 아무리 걸어도 조금도 힘들어하는 기색이 없을 수가 있지? 그래도 내가 지쳐 하는 것 같을 때면 금세 알아차리고 벤치를 찾는 네 눈빛이 마음에 들었던 것 같아. 잠깐만 쉬고 있으라며 뛰어가서는 내가 좋아하는 음료수를 사 오는 것도. 이후로도 꽤 많은 산책을 했는데, 별다른 목적 없이 만나서 함께 걷는 그 시간이 좋았어. 걷는 동안 같은 시선으로 같은 것을 바라보며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도, 계속 달라지는 풍경에 얘기 나눌 소재가 끊이지 않는 것도, 모두 다. # D-219 내가 맨날 하던 거 있지, ‘만약에~’ 이거, 기억나? 허무맹랑한 소리라며 그런 일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다고 제대로 대꾸도 안 해주는 다른 친구들과 달리, 내 만약에 게임에 진지하게 고민해 주고 최대한 구체적으로 대답해 주려 하는 모습이 조금 감동이었어. 사실 조금이 아니라 많이 고마웠어. 나중에야 알았거든. 내가 그런 상상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를 재밌어하는 것 같아서, 어떻게든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네가 머리를 쥐어짜 냈다는 걸. 그 시간이 나만 즐거웠던 게 아니면 좋겠다. 맞춰주려고 노력해 줘서 고마워, 너는 참 다정한 사람이야. # D-185 연애는 서로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하는 것 같다고, 그래서 나는 너를 믿는다고, 우리 둘 다 같은 말을 했었지. 바빠서 오랜 시간 연락이 닿지 않아도, 이성이 끼어 있는 술자리에 나가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던 것 같아. 내가 선택한 사람이 나를 실망시키는 일은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그랬나 봐. 같이 있는 동안에는 최대한 행복하게 보낼 방법을 고민하고, 떨어져 있는 동안에는 상대방의 개인적인 시간을 진심으로 존중해주는 네 모습이 나와 닮은 것 같아서 좋았어. 그런 점에서 우린 참 잘 맞았던 것 같아. 근데 어디서부터 잘못됐던 걸까. # D-131 나는 너의 가치관이 궁금해서, 네가 어떤 사상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생각들이 궁금해서, 그냥 그래서 사회적으로 예민할 수도 있는 점들을 너와 함께 얘기해 보고 싶었어. 처음에는 싸울 것 같다며 피하기만 하던 네가 어느새 나와 같이 토론해 주는 것같이 느껴져서 그게 되게 고마웠어. 근데 나는 너를 설득하려 얘기를 꺼낸 게 아니라 단지 우리가 서로 다른 부분을 이해하고 싶어서 그랬던 건데 너는 아니었나 봐. 너는 우리가 같아지길 바랐나 봐. 하나의 핀트에 꽂히면 내가 네 의견에 동의할 때까지 이어 나가던 몇 시간의 통화가 나는 점점 지쳐갔어. 우리 누가 옳고 그른 지 따지려 시작한 이야기가 아니었잖아. 그런데 항상 마지막엔 그렇게 흘러가는 것 같아서 나는 그게 많이 아쉬웠어. 너는 끝까지 나를 설득하려 했고, 나는 끝까지 그런 너에게 넘어가고 싶지 않았고.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둘 다 참 미련하다, 그치. # D-74 “여기 와봤어? 이거 먹어봤어?” 처음이건 아니건 뭐가 중요하길래 그렇게 집요하게 물어보는지 몰랐어. “첫눈 오는 날, 무슨 일이 있어도 만나야 해!” 우린 각자의 일정으로 만나지 못했고,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기분이 상한 걸 온몸으로 티 내는 네 모습을 이해하지 못했어. 나의 첫사랑이 네가 맞는지 물어볼 때, 네 말의 의도를 뻔히 알고 있음에도 사랑에 숫자를 매기며 처음에 집착하는 너의 그런 부분이 우습고 싫어서 끝까지 네가 원하는 대답을 하지 않았어. 그냥 지금 이 순간에 우리가 같이 있다는 게 중요한 거 아닐까. 현재에 진심을 다해 충실하면 됐지 굳이 과거를 끌어와 더 나은 현재를 만들려는 네가 이해되지 않았어.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네가 ‘처음’에 집착했던 이유는… 그 단어에 설렘과 두려움 등 여러 감정이 담겨있고, 그렇기 때문에 그 모든 걸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어. 싸우는 날들이 늘어갈수록 마음이 차분해지기 시작했어. # D-0 나는 우리가 비슷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근데 그냥 내가 원하는 연애를 하기 위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네가 맞춰주고 있었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았어. 나는 바라지도 않았는데 말이야. 그리고 나는 원래의 네 모습이 보일 때마다 이해되지 않으면서도 싸우기 싫어서 그냥 덮어두고는 넘어갔지. 너도 그걸 바라진 않았을 텐데 말이야. 우리 서로 진작부터 솔직했다면 지금과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잠시 생각해 봤는데… 아니, 우리는 똑같았을 거야. 그냥 너랑 그만하고 싶으니까 그렇게 생각할래. 나는 더 이상 너에게 화가 안 나. 이해되지 않는 것도 없어. 네가 하는 모든 생각과 행동들, 다 그럴 수 있지. 응, 나는 이제 그냥 0이 된 거야. # D+45 너와 헤어지고 나서 별생각 없이 바쁘게 살다 보니 정리하는 걸 까먹고 있었어. 그래서 생각난 김에 한 번에 다 하려 했는데, 내가 사진 찍는 걸 싫어했던 터라 정리할 것도 없더라. 미안해, 그렇게 같이 사진 찍고 싶어 했는데 그거 한 번을 못 해줘서. 네가 앞으로 만날 사람은 꽤 다정하고, 세심하고, 귀엽게 애교도 부릴 줄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사랑스러운 말과 함께 영원을 약속하고, 말하지 않아도 너의 감정을 깊게 들여다보며 공감해 주고, 네가 원하는 방식으로 기분을 풀어줄 수 있는 그런 사람. 네가 내게 바랐지만 나는 될 수 없었던. # D+127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 너와 헤어지고 혼자 지내는 게 너무 편했던 날들이 무색하게도 어느새 그런 사람이 생겼어. “보고 싶어, 지금 갈게.”가 아니라 “보고 싶은데 언제 시간 괜찮아?”라며 나에게 여유를 주는, 내가 원하는 배려를 해주는 사람을 만났어. 이 사람은 정말로 나와 비슷한 사람인 것 같아. 무던해 보이는 성격도, 자기 감정에 대해 솔직한 것도, 터무니없는 상상과 농담을 즐겨하는 것도. 같이 있을 때 서로 아무 말이 없어도 너무 편안하고 좋아. 그래서 너와 했던 연애를 경험 삼아 이 사람이랑 더 나은 연애를 하고 싶어. 그러니까 너도 이제 그만 프로필 사진이랑 상태 메시지 지우고, 좋은 사람 찾을 수 있길 바랄게. 정말로 잘 지내,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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