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입선] 급식산업에서 조직 구성원의 성격이 조직성과에 미치는 영향: Big 5 성격특성을 중심으로
급식산업에서 조직 구성원의 성격이 조직성과에 미치는 영향: Big 5 성격특성을 중심으로.hwp (다운로드 링크) 변선태 (식품영약학전공) 작성한 보고서를 혼자서 가지고만 있어야 하는 것이 아쉬웠던 참에 학보사 학술 공모에 이것을 제출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운이 좋게 수상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좋은 기회 주신 상명대 학보사에 감사드립니다.
제48회 상명학술상 수상자
2021 제48회 상명학술상 수상자입니다. 수상을 축하 드립니다.
[논문 당선작] 고령 1인 가구를 위한 고령친화 간편식 제안 및 소비자 구매 의사 분석
고령 1인 가구를 위한 고령친화 간편식 제안 및 소비자 구매 의사 분석 작품 감상 링크: https://blog.naver.com/smuhakbo/222592466166 저작권 문제로 논문 당선작은 파일만 첨부합니다. 링크를 통해 확인 부탁 드립니다. 조지훈(식물식품공학과) 안녕하세요. 저는 식물식품공학과에 재학중인 조지훈입니다. 먼저 저의 논문이 제48회 상명 학술상 논문부문 당선작으로 선정되어 너무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평소 식품산업의 미래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즘 각광 받고 있는 가정간편식이 미래에 1인가구의 고령자를 위해 발전해나갈 것이라는 예측을 상명 학술상이라는 기회에 담아보려 노력하였습니다. 끝내 이 노력은 인정을 받았습니다. 상명 학술상에 당선작이라는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많은 것을 가르쳐 주신 저희 과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좋은 기회를 만들어주신 상명대학교 학보사 관계자분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논문 심사평]
김미형 교수(한국언어문화전공) “고령 1인 가구를 위한 고령 친화 간편식 제안 및 소비자 구매 의사 분석”을 “당선작”으로 평가함. 이 논문은 고령 친화 간편식 제품 개발의 토대 자료를 위한 ‘인지도, 소비패턴, 선호형태 및 구매 의사’ 설문 조사를 시행하고 이를 기반으로 제품 개발 아이디어를 제안한 것으로 창의성이 있음. 논문 주제 선정의 동기를 탄탄하게 하는 관련 문헌 연구도 잘 정리되었음. 설문 조사 대상을 40대 이상 일반 소비자로 하여 고령 1인 가구가 아닌 사람을 포함하고 이 점에 대해 설명하고 있으나, 조금 더 분석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봄. 전반적으로 전공 관련 사회적 변화를 잘 인식하고, 이와 관련된 국내 제품 개발의 미흡함을 분석하여 본 논문의 연구 주제를 선정했다는 점과 현장의 인식 파악을 포함하는 연구 방식을 계획하여 실시한 점을 우수하다고 평가하여 당선작으로 뽑음.
[소설 가작] 미래로부터
미래로부터 작품 감상 링크: https://blog.naver.com/smuhakbo/222592462599 그 동네는 음식에 소금치는 법이 없었다. 바닷가 근처에 자리 잡은 오래된 마을은 아침에 깔린 안개에도 소금기가 있어 입안이 짜다 못해 썼다. 한아네 집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횟집을 운영했다. 바람이 펄럭거리는 소리와 생선이 펄덕대는 소리가 동시에 들리는 곳이었다. 한아는 그게 싫지도 좋지도 않았다. 동정이 헤픈 편은 아니었으나 횟집 앞 수조를 들여다보며 한아는 자주 동정했다. 저 좁은 수조가 온 세상일 거라 생각하니 눈 몰린 광어가 측은했다. 일곱 살 무렵에 한아는 장사하는 엄마 몰래 수조에서 광어를 꺼내 품에 안았다. 물 안에서는 숨은 쉬는지 움직임 하나 없더니 한아의 품 안에선 펄떡거리며 생명의 끈을 튕겨댔다. 그날따라 한아는 물고기를 바다에 보내줘야 한다는 생각에 휩싸였다. 있으면 안 될 곳에 있는 그 생선을 품고 근처 바다로 향했다. 미끈거리는 놈은 힘이 어찌나 센지 한아의 두 팔이 후들거렸다. 작은 보폭으로 뛰듯이 걸었다. 모래사장을 가로지를 때쯤엔 광어가 얌전해졌다. 물고기가 얌전하다는 뜻은 좋은 게 아니었다. 아가미 달린 것들이 그랬다. 한아가 걸음을 멈추고 광어를 본래 있어야 할 곳으로 되돌려줬다. 바닷속에서 어색한 듯 힘겹게 꼬리를 턱턱 흔드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러다 이내 배를 뒤집었다. 파도가 치는 물결 따라 몸이 둥둥거렸다. 자신의 밑바닥을 보이며 광어의 숨이 멎었다. 이러려던 게 아닌데. 한아의 눈가에 물이 차올랐다. 눈물이 바다로 한 방울씩 떨어졌으나 고작 인간의 눈물이라 티가 나질 않았다. 어쩌면 그 광어의 순리는 바다가 아닌 수조였을 수도 있겠구나. 무언의 깨달음과 무언의 순응을 배운 한아의 뒤로 잔뜩 화가 난 엄마가 보였다. 장사할 생선을 대체 왜 네 맘대로 꺼낸 거야! 엄마의 불같은 호령에도 한아의 시선은 바다에 박혀있었다. 다시는 살아있는 무언가에 동정하지 않을 거야. 어린 한아는 체념을 배웠다. 그런 한아가 다시 동정을 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미래였다. * 나는 미래라고 해.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미래가 아닌 걸 알았다. 교탁 옆에 서있는 애는 겉모습은 인간이었으나 무언가 축축했다. 맨 끝자리에서 무심히 시선을 던지는 한아도 저 아이가 인어라는 걸 알았다. 한낱 인어. 얼마 지나지 않아 안개처럼 사라질 인어. 인간의 대타인 인어. 인어는 흔했다. 특히 바닷가 마을에선 더더욱 그랬다. 아마도 정부에서 관리하는 인어일 것이다. 미래라는 인어 앞으로 수십 명의 목숨줄이 대기하고 있을 터였다. 인간들은 인어를 물건 대하듯 대했다. 아무리 의학이 발전하고 과학이 새로운 기술을 내놓아도 죽음은 인간 곁에서 떠나질 않았다. 사연도 가지각색이었다. 누구는 간이 필요했고 누구는 심장이 필요했다. 인간이 인간에게 자신의 장기를 주는 일은 확률이 희박했다. 그 확률에 대기자들은 목숨을 걸었다. 숨 막히는 확률에 질린 생명공학자들이 눈을 돌린 게 인어였다. 미래는 장기기증 전용 인어로 태어났다. 인간인지 어류인지 아주 애매했다. 미래는 누군가의 따뜻한 뱃속이 아닌 차가운 시험관에서 탄생했다. 축복이 아닌 인간들의 이익을 위해 태어난 미래는 불릴 이름조차 가지지 못했다. 탄생부터 자신의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삶이었다. 그렇게 태어난 모두를 미래라고 불렀다. 처음에는 공장식이었다. 양계장에서 닭 키우듯 인어를 키웠다. 겨우 몸 하나 들어갈만한 수조를 빽빽이 채워 인어를 한 마리씩 넣었다. 그게 인어가 누릴 수 있는 세상의 전부였다. 그렇게 길러 낸 인어가 처음으로 밖을 나서는 순간이 있었다. 목적지는 병원이었고 차가운 수술대에 올라가는 게 순간의 마지막이었다. 세상의 공기를 처음 들이신 장기들이 각기 다른 인간의 몸뚱어리로 이식됐다. 인어는 가죽만 남은 채 태워졌다. 운명이 기구했다. 그러다 윤리 단체가 공장식 인어 사육을 전면 교정하라며 시위를 시작했다. 표면적으로는 인어의 권리를 생각해 주는 것처럼 보였으나 실은 개살구였다. 공장식으로 자란 인어들의 장기 상태는 질이 떨어졌다. 심장 판막이 헐겁게 자라는 인어가 존재했고 폐에 구멍이 뚫려 물이 자꾸만 몸속으로 들어오는 인어가 존재했다. 가장 소리를 크게 외친 건 윤리 단체의 회장이었다. 우습게도 회장은 작년에 어린 인어의 콩팥을 이식받았다. 그것에 대한 속죄인지 혹은 또다시 한번 필요할 수도 있는 여분의 콩팥을 위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인간은 죽음 앞에서 자신의 신념을 버렸고 인어는 인간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렸다. 도대체 이 순리는 누가 만들었지. 희생은 위해서 생기면 안 되는 것인데 인간들은 지구보다 역사가 짧아 그걸 몰랐다. 결국 윤리 단체들과 시민들의 반발로 몇 해 전 법이 개정됐다. 장기이식용 인어는 만 17세까지 일반 사회에서 어울려지내야 했다. 학교를 다니며 인간 학생들과 지내야 했다. 건강해야 했다. 독단적인 행동을 할 수 없으며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못하도록 감시했다. 창살 없고 아주 넓은 수조와 다를 바가 없었다. 국가가 지정해 준 지역에 인어를 할당제로 배부했다. 배부가 꼭 맞는 표현이었다. 마치 반려견을 들여오듯 지역에서 정해진 숫자의 인어를 도맡았다. 그런 사회는 미래로부터 차가웠다. 미래가 가진 하나의 심장 앞에 천 명씩 줄을 서놓고 정작 심장의 주인인 미래에게는 냉담했다. 미래가 누릴 수 있는 모든 조건을 다 앗아갔다. 전화를 걸어 가족들의 따뜻한 목소리를 듣는 행위조차 미래에게는 꿈같은 일이었다. 애초에 가족을 만들어주지도 않았다. 미래는 대부분 홀로 태어났고 홀로 떠났다. 자연스러워 아무도 반문하지 않았다. 감히 인간에게 반문하는 인어 따위는 없다. 인간은 인어에게 전지전능한 신과 다를 바가 없었으니까. 그런 인어 미래가 한아의 반으로 왔다. 아마 할당제로 들여온 인어 중 하나일 것이다. 한아는 시선을 돌렸다.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었다. 담임선생님은 그리 넓지 않은 공간을 빙 둘러보다 한아의 옆자리에서 눈동자가 멈췄다. 짧은 소개를 마친 미래를 1분단 끝자리로 안내했다. 드르륵, 듣기 싫은 의자 끄는 소리와 함께 한아의 옆자리로 미래가 앉았다. 미래는 숨소리가 작아 인기척조차 없었다. 인간이 그렇게 만든 건 아니고? 한아는 실없는 생각을 했다. 미래는 조용했다. 마치 그래야 될 것처럼 소리를 죽이고 존재감을 죽였다. 수업에 성실히 임했고 숙제도 척척해왔으나 어쩐지 눈에 띄고 싶지 않아 하는 것처럼 보였다. 한아가 옆자리에서 지켜본 바로는 그랬다. 한아도 소란스러운 것은 질색이었기에 짝꿍으로서 미래가 싫지 않았다. 허나 모든 마음이 한아같지 않다는 것이 문제였다. “야 너 진짜 인어야?” “꼬리 보여줘 봐.” “아가미는? 숨은 아가미로 쉬나?” 세상에 딱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면. 그게 관심과 무관심이라면. 분명히 무관심이 나았다. 미래가 자신이 살아오면서 혹은 인간들에게 길러지면서 습득한 결론은 그랬다. 미래는 분노보다 순응을 먼저 배웠다. 화를 가르치기 전에 침묵과 복종을 가르쳤다. 평범한 인간 고등학생들처럼 학교생활을 하라는 것이 아니란 걸 안다. 인간들을 살리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지만 어쩐지 미래는 자기가 죽기 위해 태어난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게 슬프거나 원망스러운 건 아니었다. 마치 우주를 관통하는 순리이겠거니 받아들였다. 발악하고 싶지 않았다. 때로는 인정하는 것이 편한 순간이 있었다. 세상이 관심과 무관심 둘로 나뉘는 것처럼 이 작은 반 아이들 역시 그랬다. 무관심은 차라리 낫다. 미래가 있는 듯 없는 듯 여겨주는 아이들은 오히려 고마울 지경이었다. 문제는 관심의 영역에 있는 아이들이었다. 아주 좁은 어항에 그득 찬 물고기들 사이에 미끼로 내던져진 격이었다. 줄에 대롱대롱 걸린 미래는 아주 보기 좋은 먹잇감이었다. “말 좀 해봐. 아 인어라서 목소리가 안 나오나?” 낄낄거리는 소리가 역했다. 미래는 가만히 작게 웃고만 있었다. 쉬는 시간에 책상 위로 엎어져있던 한아는 귓가에 닿는 소리에 잠이 깼다. 깨고 보니 옆에서 벌어지고 있는 어이없는 상황에 웃음이 샜다. 뭘 좋다고 웃고 있는 거야. 미련한 건지 천치인지 헷갈렸다. 자기 세뇌를 걸었다. 이건 동정이 아니야. 그냥 시끄러워서. 난 시끄러운 게 싫으니까. 동정은 아니야. 한아가 주문을 세 번쯤 외우고 참다 참다 입을 뗐다. “어. 얘 인어라서 말도 못 하고 내가 대신 말해줘야 되는데 지금 너네 다 꺼졌으면 좋겠대.” 입꼬리가 전혀 올라가지 않은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말이 뚝뚝 갈라지는 얼음 같아 미래는 입술에서 냉기가 흘러나오는 것은 아닌지 힐끗 쳐다보았다. 한아는 진저리 난다는 눈으로 미래를 괴롭히던 아이들을 응시했다. 한아는 좋은 쪽이든 안 좋은 쪽이든 관계를 쌓고 유지하는 일에 피곤함을 느꼈다. 친구를 사귀어서 얻는 기쁨보단 사귀어서 생길 귀찮음에 중점을 두었으니 반 아이들과 친하지 않은 건 당연했다. 그런 한아가 처음으로 타인에게 말을 걸었다는 것이 아이들 입장에선 낯설었다. 쟤가 말도 할 줄 아는 애였어? 황당해하는 얼굴로 한아와 미래를 번갈아 쳐다보던 아이들은 음침한 것들끼리 쌍으로 잘 만났네. 중얼거리며 자리를 떴다. 끝까지 치졸했다. “어떻게 알았어?” “뭐가.” 말 한마디 하지 않던 미래가 입을 달싹거리더니 문장을 뱉었다. 겨우 한 문장 되는 말에 조심스러움이 가득 담긴 게 느껴졌다. 한아는 그다음 교시인 문학 교과서를 가방에서 꺼내다 고개를 들어 반문했다. “꺼지라고 하고 싶었던 거...” 우물쭈물하며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폼이 퍽 웃겼다. 화는 못내도 감정은 있구나. 그게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어쩌면 없는 게 낫진 않았을까 생각했다. 상처받을 바엔 느끼지 못하는 쪽이 덜 아팠다. 인간들은 대체 왜 인어를 혐오할까. 같은 인(人)을 공유하는 것을 부정이라도 하는 듯 하급 시민 취급을 했다. 인어가 없으면 죽어나가는 인간이 그토록 많은데도. 인간은 자꾸만 가르치려 들어서 탈이다. 동물을 가두어 동물원을 만들고 바다에서 살던 아이들을 빌딩 가득한 도시 수족관으로 자꾸만 데려왔다. 그건 그 아이들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일종의 납치다. 우리 밖에서 구경하며 유리벽을 쾅쾅 쳐대는 것으로 모자라 이젠 감정이 있고 의식적 사고를 하는 인어까지 탐냈다. 온전한 인간은 아니니 동물 취급을 해도 됐고 동물이라기엔 인간과 똑같은 장기 구조를 가지고 있으니 활용하기 좋았다. 자신들이 죽지 않기 위해 인어를 자꾸 죽였다. 생의 윤리가 꼬여가고 있었다. 미래의 말에 한아가 생각에 빠져 답이 없자, 미래는 익숙하다는 듯 혼자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까 나한테 꼬리 보여줘 봐라고 했던 애 있잖아. 걔 사실 나 인어인 거 이미 알아. 올해 초에 걔내 엄마가 내 비장 이식받아 갔거든. 병실에서 만났었어. 그리고 우리 반 담임선생님 동생도 작년에 내 간 반쪽 이식받았어. 그래서 그런지 친절하게 대해주시더라. 내 비장. 내 간. 한아가 인생을 살아오면서 자신의 몸에서 직접 꺼내어 볼 수도 없는 장기들이 미래의 입에선 툭툭 쉽게 튀어나왔다. 자신의 방 어딘가에 있는 물건 말하듯 장기를 이야기하는 미래가 소름 끼치지도, 무섭지도 않았다. 대체 누가 이렇게 만들었지. 짚고 넘어갔어야 할 근본적인 물음이 한아의 머릿속에서 빙빙 돌았다. “그래서 꼬리는 진짜 있어?” 아무리 고민해 보아도 결국 한다는 게 이런 질문이다. 꼬리는 인간 따위에게 없으니까. 오직 미래만이, 인어만이 가진 것이니 묻고 싶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지만 한아는 그 아이만 가진 것이 궁금했다. “응.” “진짜?” “응 있어. 물에 들어가야만 볼 수 있어.” 미래가 목소리를 얕게 낮추고 이야기했다. 누군가에게 자신에 대해 말해본 것이 처음이라는 듯 숫기 없는 얼굴이다. 한아는 타인과 가까워지길 싫어하는 게 맞다. 그 이유는 아주 복합적이고 오래된 조건 같은 것이라 불변의 진리 같았다. 살다 보면 다양한 경우의 수에 마주친다. 한아는 확률에 약해서 자신을 괴롭게 하는 상황이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계산하기가 어려웠다. 학교 가는 버스를 탔을 때 그날따라 예민하고 호통을 치는 기사님을 만나면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고 어린 고등학생을 무시하는 가게 직원을 마주칠 때도 감정이 바닥을 쳤다. 한아의 감정 소쿠리는 내구성이 아주 약한 편이다. 태어나길 그렇게 태어나 어릴 적엔 툭하면 울고 상처받았다. 그땐 나이가 무기인 시기라 ‘김한아’ 앞에 오는 한 자릿수 나이로 이해를 받을 수 있었으나 지금은 아니었다. 눈가가 짓무를 정도로 우는 것도, 매일매일 상처받는 것도 지겨워 한아는 경우의 싹을 자르기로 마음먹었다. 문을 닫고 자신이 상처받지 않을 상황이 보장된 루트만 품었다. 그제서야 삶이 삶 다웠다. 그런 한아에게 미래는 보장되지 않은 루트였다. 미래와 지낸다면 자신이 상처를 받을지 혹은 무탈할지가 확인이 불가능했다. 원래 한아가 살고 있는 삶의 조건이라면 미래와 엮이지 않는 게 맞았다. 괜찮을 수도 있었지만 반대로 괜찮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더군다나 미래는 인간이 아니라 변수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아는 자꾸만 미래가 괜찮을 것이라는 느낌이 왔다. 애초에 괜찮지 않다면 인간에게 장기를 선뜻 내어줄 리가 없다. 그러니 미래는 괜찮을 거다. 평소라면 길게 이어지지 않았을 대화가 한아의 말로 꼬리가 이어졌다. “네 꼬리는 무슨 색이야?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엄청 반짝거리던데.” “푸른색이야. 드라마처럼 반짝거리진 않아. 햇빛 아래에서 보면 그렇긴 한데 연구실에 있으면 햇빛 볼일이 거의 없으니까...” 대체 이 아이에게 주어진 것이 있긴 한가. 미래 입에서 나오는 문장 속에서 자유와 의지랄 것이 없었다. 억압과 명령이 가득한 곳에서 살다가 죽어야 했다. 미래는 그나마 운이 좋은 케이스였다. 국가에서 할당된 정식 인어이기에 인간들과 사회 교류도 하고 친구도 사귈 수 있었다. 아무도 친구가 되려 하진 않았지만. 대체 인간들은 인어를 인어로 봐준 적이 있긴 한가. 누군가의 대체품처럼 사용하다 버리고 또 다른 인어를 연구실에서 공장식으로 키우는 것이 끔찍했다. 나라도 해야지. 인간 같지 않은 인간들이 그들을 한낱 인간 대용이라 대할 때 나라도 그들을 인어로 대해줘야지. 그래서 한아는 미래가 미래 다운 모습이 보고 싶었다. 두 다리보다 하나의 꼬리로 헤엄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았다. “나는 나리 해변 지나치는 23번 버스 타고 집에 가는데 너는?” “어?” “집에 뭐 타고 가냐고. 걸어 다녀?” “아... 아니, 나도 23번 타. 정부에서 마련해 준 숙소 가는 버스가 그거뿐이라...” “잘 됐다. 나중에 같이 집 가다가 해변에서 내리자.” “왜?” “네 꼬리 궁금해서. 수영 잘하지?” “응. 나쁘지 않지.” 미래가 웃으며 말한다. 그럼에도 눈빛에서는 네가 나에게 대체 왜, 라는 물음이 읽혔다. 세상이 미래에게 단 한 번도 숙여준 적이 없어 미래는 지금 모든 게 낯설었다. 인간 친구를 사귀는 것도, 동등한 입장에서 인간과 이야기를 해본 것도 모두 처음이었다. 한아는 티를 내진 않았으나 탄식했다. 세상이 얼마나 박하게 굴었으면 고작 이런 걸로 웃고 기뻐하나. 미래와 한아가 가까운 미래를 약속했다. 춥지 않고 날씨가 좋은 날 둘은 해변에서 내릴 것이다. 인어에게만 존재하는 꼬리를 인간에게 보여주기 위해. 한아는 미래가 마음에 들었다. * 한아와 미래는 그렇게 가까워졌다. 아침에 학교를 오면 가장 먼저 서로의 안부를 묻고 찾았다. 급식을 함께 먹었고 쉬는 시간 내내 실없는 이야기를 하며 웃기 바빴다. 그들은 반에서 비주류에 속했으나 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항상 다수가 옳은 쪽에 서는 것은 아니었다. 학교는 같은 반 아이들을 일주일에 다섯 번씩이나 볼 수 있는 규율과 제도가 확립된 공간이다. 그 나이 때 아이들은 매일 봐도 매일 즐겁기에 아침 조례 시간마다 시끌벅적하게 반가워했으나 한아의 경우 반가움의 농도가 더 짙었다. 이유는 미래는 이 규율과 제도 속에서 예외였기 때문이다. 어느 날 미래는 아무 말도 없이 삼일을 내리 결석했다. 주말까지 보낸 후 월요일에서야 한아와 만날 수 있었다.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미래의 얼굴을 보지 못했던 경우는 처음이었기에 한아는 몹시 당황스러웠다. 어릴 적 읽은 인어공주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그 애가 정말 물거품처럼 사라진 건 아닐까, 라는 결론을 도출하다 이내 그만뒀다. 오랜만에 마주한 미래의 얼굴에는 동그란 안경이 걸려있었다. 까만 뿔테안경이 아슬아슬하게 절벽에 매달려있는 것처럼 미래의 콧잔등에 내려앉아있다. 안경 아래의 왼쪽 눈이 하얀 거즈로 가려져있었다. 한아는 앞문을 열고 자리로 다가오는 미래의 얼굴을 한참 바라봤다. 문에서 1분단 끝자리는 고작 몇 미터 되지도 않는 대각선 거리였는데 그 짧은 사이에 미래가 책상 모서리에 여기저기를 부딪혔다. 쿵. 쿵. 숨소리도 작은 미래가 우당탕 거리며 오는 광경이 낯설었다. 미래가 낼 수 있는 최대치의 큰 소리를 내며 한아의 옆자리에 앉았다. “한아 안녕.” 오랜만에 인사를 건네는 게 자신도 머쓱한지 미래가 뒤통수를 몇 번 긁적였다. 여기서 어떤 대답이 적절할지 몰라 한아는 고민했다. 한아의 마음속에서 가장 많이 부유하는 감정은 단연 걱정이었다. 그리고 조금의 서운함과 반가움. 한데 뒤섞여서 어떤 감정부터 꺼내야 할지 한아는 조금 멀미가 났다. 감정은 가슴속에 묵혀두면 고여 썩기 마련이기에 한아는 차례대로 천천히 꺼내기 시작했다. “그동안 학교 왜 안 나왔어? 걱정했잖아.” “아... 병원에 좀 다녀왔어. 미리 말 못 해서 미안. 나도 대부분 갑자기 가는 일이 많아서.” 한아는 그 말이 미래가 아파서 병원에 다녀왔다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미래가 자발적으로 병원에 가는 순간이 있긴 할까. 타의에 의해 병원에서 자신의 무엇을 잃고 돌아오진 않을까. 삶이 잔인했다. 미래의 가려진 한쪽 눈을 보자 토악질이 나올 정도로 속이 메슥거렸으나 티를 낼 순 없었다. 한아 자신도 인간이었으니까. 미래를 그렇게 만든 존재와 같은 카테고리 안에 있는 인간이었으니까. 우습게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고를 말이 없기도 했다. “눈은... 왜 그래?” 어렵사리 거르고 걸러낸 물음이었다. 알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알고 싶지 않은 마음이 공존했다. 미래의 눈에는 또 어떤 사연이 짓눌려 있을까. 또 어떤 인간이 미래의 것을 탐낸 걸까. 미래는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동네에 행복 슈퍼집 애기 알지. 열두 살 이랬나. 슈퍼 아저씨 딸이 눈이 잘 안 보인대. 그래서 어, 음... 주고 왔어. 생각보다 일찍 끝나더라 잘 쉬고 왔어. 안경도 사주시더라. 그래서 이왕 사준다는 거 제일 비싼 걸로 골랐다? 잘 어울리지. 미래가 내뱉는 말마다 미련하기 짝이 없었다. 주고 오긴 뭘 주고 와. 한아는 그 소리가 빼앗겼다는 말처럼 들렸다. 이건 강도질이다. 도둑질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옳은 게 없었다. 화를 내기엔 이미 벌어진 일이고 울어버리기엔 한아는 미래에 비해 잃은 게 하나도 없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실없이 안경이 잘 어울린다며 말을 얹었다. 미래는 희미한 웃음으로 응답했다. 미래가 왼쪽 눈을 잃어도 미래는 미래다. 미래가 이제 오른쪽 세상만을 바라봐도 미래는 미래였다. 비록 한아가 왼쪽에서 다가오면 조금 늦게 알아차리고 책상과 벽에 부딪히기 일쑤였지만 어쨌든 미래였다. 한아는 걸음이 느려진 미래를 위해 발맞추어 걸었다. 안경은 시작이었다. 미래가 가끔씩 학교에 나오지 않을 때마다 한아는 이번엔 또 어떻게 발맞추어 걸어줄까. 고민하며 시간을 보냈다. 부디 이 시간이 오래도록 지속되길 바랐다. 그거면 된 거라고 위안했다. * 날씨가 좋았다. 하늘은 청명하고 바다는 푸르러서 모든 게 선명한 날이었다. 물이 가득한 동네라 안개가 끼는 날이 많았는데 전혀 찾아볼 수가 없는 희귀한 하루였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바람이 불어 나뭇잎도 기분 좋게 흔들거렸다. 바다도 파도를 잃은 것처럼 잔잔했다. 미래는 꾸준히 학교에 나왔다. 당연했던 게 정말로 당연해진 거 같아 한아는 다행이라 생각했다. 문학 시간에 선생님이 읽어주시는 고전 소설도 오늘만큼은 지루하지 않았다. 창가 커튼이 살랑거리며 나풀거리는 자리에 앉아 한아는 창밖을 내다봤다. 생기 가득한 열기로 시끄럽게 체육 수업을 받는 운동장의 아이들이 보였다. 살아있는 것들이 곳곳에서 한아의 피부로 느껴졌다. 오늘따라 미래는 조금 더 차분했다. 평소에도 소란스럽고 활발한 성격은 아니긴 했으나 그 정도가 더 깊었다. 한아가 쫙 핀 손바닥을 들어 미래의 눈앞에서 몇 번 흔들었다. 초점 없이 허공을 응시하던 미래의 시선이 그제서야 한아에게 닿았다. “무슨 일 있어?” “아니야 별일 없어.” “기분 안 좋아 보이길래.” “그랬나? 아, 한아야.” “왜?” 한아를 부르는 목소리가 유약했다. 호기롭게 이름은 불렀으나 잠시 미래는 입을 다물고 침묵했다. 한아는 재촉하지 않고 기다렸다. 미래는 자신이 기계는 아니지만 무언가 오작동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있잖아, 오늘 학교 끝나고 시간 돼?” “오늘? 되기는 하는데...” “그러면 나 수영하는 거 구경할래? 왜 그때 내가 꼬리 보여준다고 그랬었잖아.” “아 맞아. 근데 왜 오늘이야?” “그냥. 날씨가 좋길래.” 미래가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웃었다. 방금까지 흐렸던 표정과 상반되는 얼굴이었다. 그 언젠가 미래와 한아가 한 약속이 있었다. 인간은 없고 인어 미래만 가지고 있는 꼬리를 유일하게 궁금해했던 인간. 미래는 오늘 그 약속을 지켜주고 싶었다. 약속은 유리병처럼 깨지기 쉬운 단어였으나 실은 지키기 위해 탄생한 것이었다. 한아의 볼이 슬금슬금 올라가더니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그래. 오늘 해변에 가자. 응답이 날씨처럼 시원하게 돌아왔다. 학교가 끝나고 둘은 해변을 지나치는 버스에 올라탔다. 맨 뒷자리에 붙어 앉아 창문을 바라보며 내릴 역을 셌다. 바닷가 동네의 장점이자 단점은 바다가 있다는 거였다. 어쩔 땐 짜고 비린 바다가 꼴 보기 싫다가도 오늘 같은 날에는 바다가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도시에 살았다면 아마 미래의 꼬리를 보긴 어려웠겠지. 처음 보는 인어의 꼬리는 얼마나 아름다울지 가늠이 안됐다. 그저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으로만 접했지 실제 움직이는 인어의 꼬리는 처음이었다. 탈탈거리며 도로를 달리던 버스가 해변 앞 정거장에서 멈춰 섰다.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벨을 누르고 한아와 미래가 버스에서 내렸다. 여전히 날씨가 맑았다. 동네 사람들만 알음알음 아는 해변에는 운이 좋게 아무도 없었다. 새까만 돌들이 층층이 쌓여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파도 앞에서 오랜 시간 동안 깎여버린 돌들은 뾰족하고 울퉁불퉁해서 쉽게 걷기 어려웠다. 자주 부딪히는 미래를 위해 한아가 손을 내밀었다. 본래 바다의 주인은 미래인데 한아가 미래를 이끌었다. 역설적이었다. 미래는 바다가 처음이었다. 관 같은 유리박스가 아닌 넓은 바다에서 헤엄쳐보는 일이 평생소원인 시절도 있었다. 미래가 한아의 손을 놓고 두 다리를 바다에 담갔다. 점점 더 깊은 물로 나아갔다. 딱히 무섭진 않았다. 태초에 미래의 근본이 있던 공간이었다. 발목을 찰랑거리던 물이 명치까지 왔을 때쯤 자연스럽게 두 다리가 하나의 꼬리로 모아졌다. 철썩거리며 한아에게 물을 튀기니 미간을 구기며 웃는다. 저 먼바다를 자유로이 헤엄치는 미래를 향해 한아가 큰 소리로 외쳤다. “미래야!” “...” “멋있다. 네 꼬리.” 새파랗게 눈부셨다. 반짝거려서 눈이 아플 정도였다. 세상에서 빛나는 모든 보석을 가져다 대도 기죽지 않을 거 같았다. 한아의 말에 미래가 무겁게 웃었다. 수면 아래로 꺼지더니 한참을 유영했다. 자유로움이 온몸을 감쌌다. 한참을 헤엄치며 바다를 느끼던 미래가 뭍으로 천천히 올라왔다. 결심한 듯 고개를 한번 끄덕거리더니 머릿속에 흐트러져있던 문장을 조합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한아야.” “응 왜?” “나 내일부터는 학교에 오지 못할 거야.” “뭐?” “갑자기 통보해서 미안해.” “왜? 또 병원에 가는 거야? 아님 연구실로 돌아가?” 의문이 가득한 표정으로 한아가 재촉했다. 두려움이 엄습했다. 물의 것들은 바다와 떨어지면 좋을 게 없었다. 그 언젠가 어린 한아가 품에 안았던 물고기가 그랬다. 그때 그 물고기는 한참 동안 가만히 있었다. 한아의 눈앞에서 오래되어 먼지 쌓인 기억이 울렁거렸다. 바다에서 올라온 미래가 한아의 앞에 가만히 있는 게 이질적이었다. 과연 내일 만일까? 영영 오지 않는 건 아닐까? 소름이 돋았다. 이번에는 또 뭔데. 간도 뺏기고 비장도 뺏기고 각막까지 뺏겼는데 또 뭘 가져가겠다는 건데. 한아가 주먹을 꽉 쥐었다. 세상이 잘 해준 거조차 없는데 가진 거마저 악착같이 빼앗아 드는 꼴이 역겨웠다. 그나마 그동안은 괜찮았다. 미래는 자주 떠났었지만 자주 돌아왔다. 그런데 이번엔 무언가 좀 달랐다. 미래가 운다. 진주알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데 소리조차 없다. 미래는 매번 죽임을 당하다 못해 소리까지 죽이며 울었다. 삶이 악당 같다. 이 아이의 인생에 대체 영웅이랄 게 있는지 의문이었다. 우는 입에서 더듬더듬 단어들이 새어 나왔다. 이번엔 심장이래. 심장이라 그런지 하루 전에는 알려주더라. 근데 너한테 꼬리를 보여주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려서. 그래서 왔어. 모든 걸 다 빼앗긴 인어가 한아 앞에 있다. 주어진 시간이 적었다. 자신의 마지막을 쥐어짜서 미래는 한아에게 선물했다. 해변 근처로 승용차 한 대가 들어왔다. 매일 버스를 타고 가던 미래의 앞으로 검은색 세단이 도착했다. 심장이 중요하긴 한가 봐. 자동차로 데리러 와주네. 가슴 아픈 말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 미래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짓무른 눈가로 굳어있는 한아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한아야.” “......” “너는 내 인생에서 기억 남을 유일한 인간이야.” “......” “너무 슬퍼하진 마.” 한아가 그 말이 신호탄이라도 되는 듯 소리 내며 울었다. 울음이 서글퍼서 주위의 모든 것들이 소리를 낮췄다. 바람도 멈춰 서서 한아가 마음 놓고 울 수 있게 배려했다. 한아가 고개를 흔들며 가지 말라 미래의 손을 붙잡았다. 축축하고 차가웠다. 미래가 다정 어린 손길로 단호히 손을 떨어트렸다. 유약한 목소리로 미래가 한아에게 안녕을 고한다. 고마워. 잘 있어. 아프지 마. 끝까지 남 걱정이었다. 자신은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심장을 내어주는 주제에. 미래가 점점이 멀어진다. 차에 올라타자마자 빠른 속도로 한아의 시야에서 사라져갔다. 멍했다. 이별은 형체가 없어서 대체 왜 이러는 거냐며 따져 물을 수도 없다. 누군가를 죽여가며 살리는 것도 구원이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다음날 학교에 가니 꽉 찬 교실에 딱 한 쌍의 책상과 의자만이 텅 비어있었다. 주인을 잃은 자리가 공허했다. 그제야 실감이 났다. 미래가 떠났다. 미래는 누군가의 미래를 살리기 위해 떠났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게 있다.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것이 있다. 한아에게는 내일이 있지만 미래에게는 내일이 없다. 모두에게 미래가 있는데 오직 미래에게만 미래가 없다.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윤지예(글로벌지역학부) 좋아하는 계절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다가올 2022년을 조금 더 일찍 기분 좋게 시작하라는 뜻이라 생각이 듭니다. 기회주신 상명대학교 학보사도 감사드립니다.
[소설 입선작] 바다가 부른다
바다가 부른다 작품 감상 링크: https://blog.naver.com/smuhakbo/222592459853 나는 사주에 물이 없이 태어났다. 나를 처음 본 외할머니는 갓난쟁이인 나를 안고 딱 한 마디 하셨다고 한다. 얘는 평생 바다에 살아야겠다. 그 때 엄마는 속으로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비웃었더란다. 딸은 서울에 보내겠다는 원대한 꿈이 있으셨다고.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외할머니는 돌아가셨다. 외할머니와의 기억이 많지는 않지만,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바다에 유골을 뿌리러 나간 날은 똑똑히 기억한다. 평소 엄마가 치마를 입히려 하면 울며불며 거부하던 나였지만, 그 날은 어딘지 가라앉은 집안 분위기에 아무 말 없이 검은 원피스와 구두를 신었다. 촌스러운 유람선을 타고 바다로 나가는 길은 하나도 신나지 않았다. 왜 바다에 가냐는 물음에 엄마는 외할머니를 바다에 보내드리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외할머니는 분명 하늘나라에 가셨다 했는데 오늘은 바다에 보내드린다는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바다장의 모습은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바다에 유골함과 꽃을 떨어뜨렸고, 사람들이 울었고, 바다가 어지럽게 흔들리고 있었다. 어른들이 우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내가 훌쩍훌쩍 울기 시작하자 배가 한 번 크게 흔들렸다. 왜 울어? 누군가가 물어왔다. 나는 소매로 눈가를 닦으며 대답했다. 사람들이 다 울잖아. 사람들이 울면 너도 울어야 해? 정말 순수한 말투였다. 목소리라기보다는 머릿속으로 직접 전해져오는 어떠한 사념에 가까웠다. 고개를 든 나는 발화자를 찾으려 배 바깥을 둘러보았지만 넓은 바다밖에 보이지 않았다. 습한 바닷바람에 멀미가 났다. “누구야?” 내가 물었다. 대답은 배 바깥에서 들려왔다. 나는 나야 우리는 우리야 여러 목소리가 뒤섞여 들려왔다. 나는 내 키보다 큰 난간을 붙들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배에 부딪혀 하얗게 갈라지는 바닷물이 보였고, 바닷물이 반갑다는 듯 나를 향해 웃었다. 바다가 나를 향해 웃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어린 아이에겐 어떤 마법 같은 일도 이상하지 않았다. 우리 말이 들려? “응. 들려.” 내가 코를 훌쩍이며 대답하자 바다는 기쁘다는 듯 한 번 크게 일렁였다.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내게 말을 건네는 바다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 거대한 존재와 내가 말을 할 수 있다는 게 나는 기뻤다. 울지 마. 어른스러운 목소리로 바다가 말했고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가 우는 배에서 홀로 위로를 받은 날이어서, 그 날만은 잊을 수가 없다. 바다와 처음 대화한 그 날. 그 날부터 원래는 들리지 않던 말소리가 시시때때로 바닷가에서 들려왔다. 주로 바다에서 일어나는 아주 사소한 일에 대한 말이었다. 나는 그 사소한 말에 대답을 해주기 위해 매일같이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나섰다. 집 근처 포구부터 거리가 좀 있는 해수욕장까지. “바다에 뭐 볼 게 그렇게 많다고 매일같이 가자 그래.” 항상 나를 따라 나온 엄마의 푸념이었다. 엄마, 바다가 말을 한단 말이야. 내가 말하면 엄마는 ‘그래, 그렇겠지’하고 대충 대꾸해줬다. 어린 아이가 하는 평범한 상상 정도로 치부하신 모양이었다. 좀 더 나이가 들어 동생도 유치원생이 됐을 땐 동생에게도 바다와 대화를 시키려 해봤다. 동생은 내가 바다랑 말을 할 수 있다는 말을 진심으로 부러워하는 눈치였는데, 그래서인지 늘 자기도 말을 할 수 있는 척했다. “방금 바다가 뭐라 했어?” “응? 배고프대.” “거짓말 하지 마!” 내가 그렇게 말하면 동생은 얼굴이 붉어져선 빼액 울어댔다. 나는 동생이 바다랑 말을 못 하는 게 답답해서 지적을 했을 뿐인데, 동생은 그걸 굉장히 자존심 상해 했다. 결국 엄마는 동생 앞에서는 바다랑 놀지 말라며 으름장을 놓으셨고, 나는 혼자 바다를 보게 됐다. “왜 내 동생은 너랑 말 못해?” 몰라 너는 할 수 있잖아 “나도 몰라. 나는 그냥 들리는데, 해인이는 안 들린대.” 바다는 딱히 내 동생에겐 관심이 없었다. 내 동생뿐만 아니라 대체로 모든 인간에게 그랬다. 바다가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내가 유일했다. 돌고래 떼가 지나갔어 “진짜? 다시 불러오면 안 돼?” 걔넨 여기 없어 “왜. 너는 부를 수 있는 거 아니야?” 내 말에 바다가 키득키득 웃고 파도가 파르르 떨렸다. 여기가 아니라 다른 곳을 지나갔어 바다의 말은 대체로 내 또래 아이가 말하는 것처럼 단순했지만 종종 알아듣기 어려웠다. 나는 꽤 오랜 시간 바다와 대화한 후에야 그 이유를 알아냈는데, 바로 바다는 독립적인 개체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대체 뭐로 이루어진 건지는 지금도 모르겠지만, 바다는 늘 여러 목소리로 말했고 종종 자신을 ‘우리’라고 칭했다. 그렇기 때문에 바다가 내게 전해주는 소식은 꼭 우리 동네 바다의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바다가 독립된 개체가 아니라는 점은 또 다른 특징이자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성격이 매일매일 달랐다는 점이다. 어떤 날 바다는 하루 종일 살갑게 굴었고, 어떤 날은 네 살배기 아이처럼 저녁 늦게까지 자기랑 놀자고 떼를 썼다. 그러다가도 갑자기 어른스러운 목소리로 나를 달래주기도 하고, 돌변해서 화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어렸을 땐 그게 이상하거나 무섭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내가 일곱 살 땐가, 모래놀이를 하고 있던 내게 바다가 갑자기 분노하며 달려든 적이 있었다. 성난 파도가 내가 쌓은 모래성을 무너뜨리고 다시 수그러들었다. 내가 짜증스레 몸을 일으키자 바다는 토라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모두 우리를 싫어해 “누가?” 우리 말을 듣는 건 너밖에 없어 이번엔 조금 화가 난 어른 목소리였다. 나는 내 모래성을 무너뜨린 바다 때문에 집에 돌아가고 싶어진 참이었다. “집에 갈래.” 나랑 있자 우리랑 있자 가지 마 바다가 어린아이 목소리로 나를 붙잡았다. 파도가 내 발목을 한 번씩 치고 다시 미끄러져 내려갔지만, 당연히 나를 붙들 순 없었다. 나는 바닥에 있던 모래 삽을 주워서 돌아섰다. 바다는 뒤에서 ‘우우우’하고 괴로워하는 소리를 냈지만 더는 나를 부르지 않았다. 그 날 아빠는 집에 들어오지 않으셨다. 엄마는 옆 지역 어선이 전복됐다는 뉴스를 심각한 얼굴로 바라보고 계셨다. 아빠는 사람들 구하러 갔어. 그 말에 나는 창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미 해가 사라진 바깥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바다만이 혼자 울부짖고 있을 뿐이었고, 그건 일곱 살 어린 아이가 감당할 수 없는 절규였다. 그 날 나는 귀를 틀어막고 엄마 품에 안겨 울다 잠들었다. 아마 그 때가 처음으로 내가 바다를 무섭다고 생각했던 날일 것이다. 나는 바다에서 사람이 죽기도 한다는 걸 그 날 처음으로 인지했으니까. 내게 제멋대로 구는 바다는 그래도 내 친구였지만, 사람을 죽이는 바다는 아주 낯선 존재로 느껴졌다. 하지만 직접 느끼지 못하는 사실은 결국 뇌리에서 멀어지기 마련이다. 그 다음 날 바다는 내게 한 없이 다정했고, 내가 해변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수영을 하게 도와줬다. 바다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발이 닿지 않는 곳까지 나를 끌어줬고, 돗자리에서 깜박 졸던 엄마가 나를 보고 비명을 지르고서야 나를 도로 해변으로 돌려보냈다. 얼굴에 물 한 방울 묻지 않고 돌아온 나를 보고 엄마는 혼비백산한 얼굴로 주저앉으셨지만, 어렸던 나는 의기양양한 기분이 들었다. 바다는 나에겐 특별해. 나는 바다에 절대 빠지지 않고 바다는 나를 좋아해. 나는 특별해……. 그런 생각이었던 것 같다. 누군가에겐 위험할 저 바다가, 나에게만은 절대로 안전하다는 자신만만한 생각. 그렇게 나는 초등학생이 되었다. 그 때쯤부터는 바다와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정말 나밖에 없다는 걸 확실히 알아서, 다른 사람이 있을 때는 바다에게 대답하지 않았다. 혼잣말을 하는 아이로 찍히고 싶지 않아서였다. 바다는 당연히 서운해 했고 화도 냈지만, 혼자 있을 때는 내가 대답을 잘 해줬기 때문인지 어느 순간부터는 불만을 갖지 않았다. 바다는 어떻게 말을 하는 걸까? 바다의 말은 확실히 음성(音聲)이라 보기는 힘들었다. 발음 기관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닌, 어떠한 파동이 내 온몸으로 직접 전해지며 언어로 바뀌는 느낌이었다. 그렇다면 바다는 왜 그런 식으로 의사를 전달하고, 왜 그걸 나만 알아들을 수 있을까. 어떻게 이런 방식의 소통이 가능한 걸까. 거기에 생각이 미칠 즈음 나는 열한 살이었다. 여전히 바다와는 친구였지만, 나는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친구에 대한 생각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었다. 제멋대로 구는 바다에게 마냥 좋은 감정만 남아있지도 않았다. 여전히 나는 특별하다는 믿음과 거기서 오는 바다에 대한 신뢰가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바다의 정체에 대한 의구심도 품은 채였다. “너는 몇 명이야?” 바다가 유난히 기분이 좋아보이던 날. 평소처럼 포구에 들른 내가 물었다. 돌을 검게 적시고 있던 바다는 내 질문에 킥킥 웃었다. 우리는 아주 많지 “그러니까 얼마나?” 모르겠어 셀 수 없어 세는 법을 몰라 서로 다른 목소리들이 동시에 대답했다. 어른 목소리부터 아이 목소리까지. 나는 또 다른 대답을 기다렸지만 다른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내 질문에 흥미가 별로 없는 모양이었다. “너는 어떻게 말해?” 몰라 바다는 대충 대답하곤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쪼그려 앉아있던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제야 바다는 아쉽다는 티를 냈다. 벌써 가는 거냐고 묻는 바다에게 나는 ‘숙제해야 돼’라고 대꾸했다. 횡단보도를 건너 집 쪽으로 걷던 나는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날이 유독 좋아서 바다가 새파랗게 빛나고 있었다. 새파란 물결들의 흐름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나는 가방끈을 꽉 쥐었다. 저 광활한 바다에, 수 없이 많은 인격들이 녹아있다. 어디서 왔고 언제부터 존재했는지도 모를,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수한 자아들이 뒤섞여 있다. 그리고 그들의 유일한 대화 상대는 나다. 붉은 색 보도블록만 골라 걸으며 지나간 기억들을 생각했다. 내가 바다랑 말을 할 수 있다고 할 때마다 그만 좀 우기라며 다그치던 엄마의 어딘지 걱정스런 눈빛. 내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던 동생의 표정. 쟤는 혼잣말을 한다며 머리에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리던 또래들. 그리고 내가 그런 일로 속상해하면 울지 말라고 서툴게 위로를 해오던 바다……. 변덕스럽고 제멋대로지만 늘 나를 좋아해주는 친구. “아.” 갑자기 지겨워졌다. 바다의 말 때문에 사람들이 하는 말을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하는 일들도, 집에 좀 제때 오라고 엄마에게 혼나는 것도, 자기를 매일 보러 오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바다를 달래주는 것도. 그리고 그 다음 해에 제일 친한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선박 사고였다. 현장에 갔다가 돌아온 아빠는 내 어깨를 짚으며 말했다. 친구한테 잘해 줘. 그 말에 나는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폭우로 구조 작업이 난항을 겪었고, 바다도 몰아치는 비에 화가 난 상태였다. 사실 아빠가 오기 전부터 나는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절대 그 배를 건질 수 없으리란 사실을. 일주일 만에 등교한 친구는 혼이 쏙 빠진 얼굴이었다. 반 친구들이 함부로 서툰 위로를 건넬 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멍한 얼굴로 앉아 있는 친구는 하필 창가 자리였고, 창 밖에선 바다가 뭐에 성이 났는지 혼자 뭔가 구시렁대고 있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바다와 그를 배경으로 앉아 있는 친구의 옆얼굴이 괴리감이 너무 컸다. 그 친구와 함께 하교하는 길. 학교에서 한 마디도 제대로 나누지 않았기 때문에 입을 떼기가 더 두려웠다. 실내화 가방을 붕붕 흔드는 친구의 팔엔 힘이 없었다. 평소 다니던 길로 나가려는 친구의 손목을 붙잡았다. “오늘은 다른 길로 갈래?” “왜?” 그렇게 묻는 친구에게 대답하는 대신 나는 바다를 살짝 곁눈질했다. 우리가 집에 가는 길은 연안을 따라 일자로 나 있는 길이었다. 내가 바다를 의식한다는 걸 안 친구가 피식 웃었다. “나 괜찮아. 진짜로.” “그래도……. 바다가 그랬잖아.” 내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어째선지 친구 아버지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내 친구가 죽였다는 생각이 떨쳐지지 않았다. 바다는 사람도 생물도 아니지만 분명 내 친군데. 나에게는 안전한 친구가 누군가에게는 살인마라는 사실이 확 와 닿고 말았다. “그치.” 친구가 바다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맹한 눈동자에 바다가 비쳤다. “하지만 바다는 바다일 뿐이니까.” 그렇게 대답한 친구는 늘 가던 길로 걷기 시작했다. 나는 그 뒤에 한참을 서 있다가 친구의 부름에 겨우 발을 움직였다. 바다는 바다일 뿐이구나. 사람을 죽이고 집어 삼킨 괴물인데도, 친구에게 바다는 그저 바다일 뿐이다. 그 사고과정이 순간 이해가지 않아 나는 멈춰있었다. 친구 뒤를 쫓아 걸으면서야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나에게 바다는 살아있는 존재다. 대화를 할 수 있고 나를 기억하는, 심지어는 친구까지 될 수 있는 존재. 그렇기에 나는 바다가 누군가를 죽였다는 사실이 겁이 났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바다는 그저 바다일 뿐이다. 사고가 날 수도 있지만 결국엔 그냥 바다인 것이다. 나에게만 바다가 가지는 의미가 달랐다. 그 순간 바다가 해맑게 웃었다. 당분간은 비가 안 올 것 같아 좋아 비는 귀찮아 “조용히 해…….” 내가 작게 속삭였다. 친구는 듣지 못했지만 바다는 들었는지 순간 파도의 움직임이 둔해졌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바다가 의아하다는 목소리로 ‘왜?’하고 물었지만 나는 고개를 휘휘 저은 후 말없이 걸었다. 친구 앞에서 바다에게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친구가 집에 들어간 후 나는 온 길을 되돌아갔다. 바다와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었던 포구까지 숨이 차게 뛰었다. 내가 다시 돌아오자 바다는 기쁘게 나를 맞아주었다. 하지만 나는 바다가 전혀 반갑지 않았다. “왜 그랬어?” 뭐가? 왜? “왜 내 친구 아빠를 죽였어?” 격양된 내 목소리에 바다는 잠시 말없이 출렁였다. 바닷바람이 머리를 마구 헤집고, 귓가로 바람소리와 바다소리가 매섭게 뒤엉켜왔다. “왜 사람을 죽였어?” 죽이지 않았어 바다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거짓말.” 나는 그냥 같이 있고 싶어서 혼자는 외로우니까 같이 있고 싶어서 바다가 서글픈 목소리로 느릿느릿 말을 이었다. 그래서 품에 안았을 뿐인데…… 그 말에 나는 털썩 주저앉았다. 시멘트 바닥을 짚은 손이 따가웠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나는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었다. 손이 덜덜 떨렸다. “너는 배를 안으면 안 돼.” 왜? “그럼 배가 물에 빠진단 말이야.” 내 말에 바다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딴청을 피우기 시작했다. 이해하기 싫은 걸지도 몰랐다. 어른스럽던 목소리는 ‘아아아아’하고 내게서 멀어져가고, 어딘지 화가 난 목소리가 대신 대답을 해왔다. 같이 있고 싶어서 그런 건데 왜 그러면 안 돼? 그 말에 어릴 적부터 매일 들었던 바다의 말이 떠올랐다. 같이 있자. 같이 놀자. 가지 마, 떠나지 마. 정말 순수하게 나와 함께 있고 싶어 하던 그 말들이, 어느 때는 반갑고 마음이 따뜻해지기까지 하던 그 말들이 갑자기 겁이 나기 시작했다. “너는 그럼 나랑도 같이 있고 싶어?” 그 말에 바다는 빙그레 웃으며 즉답했다. 당연하지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집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바다의 부름은 더는 들리지 않았다. 실내화 가방을 포구에 놓고 왔다는 걸 집에 와서야 알았지만 다시 돌아갈 수 없었다. 나는 방에 들어가 귀를 틀어막고 한참을 울다가 기절하듯 잠들었다. 오랜 시간 믿어온 친구를 더는 믿을 수 없었다. 그게 내가 바다와 대화한 마지막 날이었다. 열두 살, 바다와의 마지막 대화 이후로도 바다는 계속 시끄러웠다. 처음 몇 달 정도는 계속 내게 말을 걸었지만 내가 무시하자 그 빈도도 점점 줄어들었다. 어릴 적부터 꾸준히 들어온 말소리를 무시하는 건 쉽지 않았지만 아주 어렵지도 않았다. 바다에게도 나와 대화를 한 시간보다 자기 혼자 살아 온 시간이 몇 배, 아니 몇 만 배, 몇 억 배는 길 테다. 그래서인지 바다도 생각보다는 쉽게 나를 포기했다. 한탄하듯이 내가 사라졌다고 내뱉는 게 전부였다. 가끔 바다의 말소리는 너무도 처절해서, 나도 모르게 대답할 뻔 한 적도 여럿 된다. 그런 날엔 먼 바다에서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가 눈에 띌 만큼 풍랑이 강했다. 왜 우리 말을 못 듣는 거야? 우리에겐 너 뿐인데 그런 말들을 무시할 때면 나도 마음이 안 좋았다. 왜 자기를 혼자 내버려 두냐고 우는 어린 아이를 눈앞에서 내치는 기분. 바다는 바람을 정말 싫어했다. 그리고 오늘처럼 풍랑 경보가 내릴 정도로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은, 바다는 내내 끔찍한 소리를 내며 괴로워했다. 정말로 바람 때문에 바다가 고통을 느끼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바다 자신에게도 높은 파도가 치는 일은 유쾌한 일이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오늘처럼 바람이 세 파도가 5미터를 훌쩍 넘기는 날엔 바다는 화가 나 있었다. 그리고, 화가 난 바다는 아빠가 탄 배를 집어 삼키려 하고 있었다. 당연히 부두 가까이엔 설 수 없었다. 사람들이 바다 근처 건물에 사고 가족 대기실을 마련해줬지만 엄마도 나도 그 안에선 초조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멀리 바다에 떠 있는 구조정들의 빛이 더 뿌옇게 보였다. 파도가 세짐에 따라 빛이 보이다가 보이지 않다가를 반복했다. 너희는 들어가 있어. 엄마가 말했지만 나도 동생도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엄마는 울지 않았지만 옆에 선 동생은 계속 소리를 내며 울었다. 바다도 울고 있다. 제각기 다른 속도로 파도가 몸을 일으켰다가 쓰러질 때마다 탄식 소리가 들려왔다. 외로워 무서워 화나 바다가 절규하고 있다. 모든 걸 삼키려 하고 있다. 우리 아빠를 구하기 위해 이 날씨에도 바다에 나가야 했던 구조정도 삼켜버릴 것이다. 그리고 아빠가 타고 있던 배도, 우리 아빠도. 네가 뭐가 그렇게 무섭고 화가 나냐고 쏘아붙이고 싶었다. 내가 더 괴롭고 화나는데. 해경 직원 한 명이 엄마에게 와서 무어라 말했지만 내 귀엔 들리지 않았다. 바다의 목소리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머릿속 구석구석을 괴롭다는 비명으로 때려대는 기분이었다. 나는 머리를 손으로 감싼 채 주르르 주저앉았다. 동생이 아무 말 없이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왔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바다의 절규하는 목소리는 여전히 귓바퀴에 부딪히고 있는데, 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게 나밖에 없다니. 저 절규를 달랠 수 있는 게 이 세상에 나뿐이라니. 한낱 인간이 어떻게 바다를 달랠 수 있을까. 그런 게 됐으면 그 많은 사람이 죽을 이유도 없었을 텐데. 머리가 아팠다. 바람을 너무 많이 맞은 피부엔 감각이 없다. 한낱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하지만. 하지만 내가 그냥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면. 그리고 그 때 엄마가 쓰러졌다. 갑자기 힘없이 픽 쓰러지는 엄마를 본 동생이 비명을 질렀고, 멀리 서있던 해경들이 달려왔다. 엄마는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고, 그런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뒷걸음질을 쳤다. 동생이 뭐하냐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지만, 나는 그런 동생과 엄마를 두고 등을 돌려 달릴 수밖에 없었다. 언니 어디 가! 동생이 당황해서 소리쳤지만, 지금은 동생보다 중요한 대화 상대가 있었다. 어릴 적 매일 같이 가던 포구까지 십여 분 정도 만에 달려 도착했다. 바람이 미친 듯이 불어서 금방이라도 몸이 넘어갈 것 같았다. 우비를 썼지만 바람이 너무 세서 별 소용이 없었다. 앞머리는 비에 젖어 이마에 축축하게 달라붙었고 안경은 빗물이 너무 많이 묻어 벗은 지 오래였다. 파도는 한 번씩 달려들다가 나를 알아보기라도 한 듯 다시 절벽 아래로 사라졌다. 그 모습에 더 화가 났다. 파도가 부서지며 울음소리를 냈다. 나를 두고 가버렸어 내가 초등학생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말투였다. 바다는 여전히 어리고 순수했고,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는 데 조금의 고민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의 높은 파도였다. 나를 두고 가버렸어 나에겐 너 뿐인데 우리에겐 너 뿐인데 왜일까. 바다는 왜 아직도 나를 기억하고 찾는 걸까. 바다가 살아온 억겁의 시간 속 나는 찰나도 되지 못할 텐데. 그 찰나인 나를 잊지 않고 바다는……. 우리에게 돌아와 나한테 돌아와 계속 나를 부르고 있다. 우리는 네가 필요해 바다가 나를 부르고 있다. 몇 년 전 내가 버린, 나의 가장 특별하고 아름다웠던 친구가 나를 부르고 있다. 갑자기 몰려오는 어떤 무거운 감정에 숨이 막혀서, 나는 양손으로 잠시 입가를 가리고 눈을 감았다. 나는 더는 저 애달픈 부름을 무시할 수 없다. 소름 돋게 무섭지만 가장 특별했던 친구. 처절한 비명을 지르는 검은 바다를 바라보다가, 심호흡과 함께 말을 뱉었다. 크게 말하려 했지만 떨리는 숨과 함께 새된 목소리가 나왔다. “왜 사람들을 데려갔어?” 내 말에 비명을 지르며 달려오던 파도가 우뚝 멈춰 섰다. 공중에 멈춰선 파도는 비바람에 흩어지며 내 얼굴에 부딪혀왔고 곧바로 다음 파도가 달려들었다. 너 역시 우리 말을 듣고 있었구나 소름 돋을 정도로 순식간에 차분해진 목소리였다. 조금 전까지 외롭다고 울부짖던 목소리는 사라지고 없었다. 파도가 나를 중심으로 갈라지며 도로에 쏟아졌다. 차가운 바닷물이 발목까지 차올랐다가 사라졌다. “왜 사람들을 삼켰냐고.” 네가 우릴 버렸잖아 바다가 날카롭게 소리 질렀다. 수없이 여러 번 말을 걸었는데 전부 무시했잖아 다 들리는데 무시한 거였어 나는 한없이 외로웠는데! 바다가 소리칠 때마다 소름이 돋았다. 바다의 감정이 전부 나에게 향한 건 처음이었고, 거대한 무생물의 감정은 인간 한 명이 감당하기엔 너무도 깊었다. 바다가 언제 만들어졌는지 나는 모른다. 인류가 지구에 등장하기 이전부터 끝없는 시간을 살아온 존재의 외로움은 내가 가늠할 수 없는 무게였다. “그래서 사람들을 데려간 거야? 외로워서 자꾸 사람들을 삼키는 거야?” 내 말에 바다가 킬킬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파도가 부르르 떨리는 게 눈에 보였다. 내가 사람들을 삼키면 그들은 모두 외로워해 나랑 같이 있는데도 외로워한다고 그러다 죽어버려 “너는 혼자가 아니잖아. 너는 ‘너희’잖아. 그런데도 외로워?” 그런 게 다 무슨 상관이야? 우리는 우리지만 다 같은 우리인 걸 다른 존재가 조금도 없는 우리인 걸 뭐가 모여서 바다를 이루고 바다의 의식을 만든 걸까. 어째서 집단적인 의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외로워하는 걸까. 저렇게나 긴 시간을 살아왔으면서. 멀리 깜박거리는 구조정을 보았다. 불빛은 파도가 거세지며 위아래로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아빠가 탄 배는 지금쯤 어떻게 됐을지 감도 오지 않았다. 다들 아직 살아있을까. 우리 밖엔 다른 것들이 더 많은데 아무도 나랑 얘기하지 않아 심지어는 너조차도 우릴 떠났어 유일하게 내 말을 듣던 네가 말이야 힐난하는 어조를 듣던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누군가에게 바다는 아름다운 곳이었지만, 겉보기엔 푸르고 평화로워 보이는 그 아래엔 눈을 멀게 하는 짙은 어둠이 있고 공허한 절규가 있다. 그리고 그 절규를 나만 들을 수 있다. 바다는 생명의 보고지만 그 자체가 생명은 아니다. 대체 나는 무엇의 말을 듣고 있는 걸까? 그 생각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바다는 신이 아니고 나는 인간이다. 바다의 말을 듣는다는 추상적인 이야기가 나의 일이 아니었으면 했다. “나는 네가 무서웠어.” 바다는 내 말에 잠시 조용해졌다. 여전히 거칠게 파도가 밀려들고 있었지만, 파도의 끝은 결국 내게 닿지 못하고 부서졌다. “나에겐 너무도 소중한 친구인데, 누군가에겐 아니라는 게. 나에겐 친절하지만 누군가에겐 난폭하다는 게, 누군가에겐 살인자라는 게.” 그게 너무 무서웠어. 바다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바다가 무섭다. 우리 아빠와 아빠의 동료들을 집어삼키고 아래로 끌고 가려는 바다가 무섭다. 세상이 이렇게나 발전했어도 뒤집어진 배 하나 꺼낼 수 없다. 인류가 달에 가고 태양계 너머로 우주선을 보내는 시대지만 바다에 빠진 배 하나 꺼낼 수 없다. 그런 거대한 존재를 어떻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저 존재가 외로워서 이런 짓을 벌이는 거라면, 적어도 나는 그걸 막을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두려운 존재지만 나만이 저 분노를 달랠 수 있었다. 눈앞에 있지만 그 무엇보다도 깊고 두려운 존재. 그 존재의 말을 나만이 들을 수 있다. 바다의 부름에 나만이 응할 수 있다. “하지만 나도 네가 그리운 순간이 분명 있었어. 네가 무섭고 싫었지만 네가 소중한 순간도 분명 있었어.” 내가 천천히 말을 이었고, 바다는 조용히 내 목소리를 들었다. 잔뜩 화가 나선, 파도에 분노와 애증과 그리움을 동시에 담은 채. “내가 너를 외롭지 않게 해주면 아빠를 돌려줄 거야?” 내 물음에 파도가 높게 일었다. 아무 대답 없이 파도는 공중에 잠시 머무르다가 갈라졌다. 나는 도로 끝으로 한 걸음 내딛으며 다시 물었다. “내가 네 말을 다시는 무시하지 않는다 하면, 앞으론 사람들을 안 데려갈 거야?” 네 말을 어떻게 믿어? 내 말에 바다가 고개를 들 듯 파도를 한 번 크게 일렁였다. 반항적인 어조였지만 나는 그 파도를 본 순간 다짐할 수밖에 없었다. 일말의 기대감을 품은 그 몸짓을 본 이상, 더는 바다를 무시해선 안 됐다. 그 어리고 순수한 기대감을 무시해선 안 됐고, 결심해야 했다. 나는 이제부터 바다의 말을 듣겠노라고. 이미 우릴 한 번 버렸으면서 우린 너를 그렇게 오랫동안 그리워했는데 들은 체도 안했으면서 “다시는 안 그럴게. 그러니까 제발.” 우리 아빠 돌려줘. 오른쪽에서 불빛이 달려들었다. 경적과 함께 타이어가 도로에 긁히는 소리가 날카롭게 귀를 찔러오고 피할 새도 없이 나는 자동차 전조등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찰나의 순간에 파도가 가드레일을 넘어와 나와 자동차를 뒤덮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거센 파도에 휩쓸린 자동차는 밀려나며 뒤집혔고, 나는 자동차 반대방향에 있는 가드레일로 끌려가 부딪혔다. 내가 부딪히자마자 파도는 아래로 사라졌고 나는 뒤집힌 자동차를 보며 기침을 했다. 안경도 없는 탓에 눈앞이 흐렸다. 정말 나를 다신 안 떠나는 거야? 바다가 조용히 물어왔고 나는 물을 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럴게. 정말 내게 돌아와 주는 거야? “그래.” 이제 내 말 무시 안 할 거야? “그래. 너희 말 무시 안 할 거야.” 다시 내 말에 대답해주는 거야? “그래.” 나는 네가 없어서 너무 외로웠어. 고개를 들고 새까만 바다를 쳐다보았다. 여전히 비가 쏟아지고 있지만 파도가 조금씩 잔잔해지고 있었다. 어린아이가 한참을 울다가 지쳐서 울음을 그치는 것처럼, 천천히 느릿느릿 바다는 힘을 빼고 있었다. 멀리 구조정의 불빛이 넘실거리며 점점 육지로 가까워지는 게 보였다. 바다가 바람의 흐름과는 반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배를 아예 해안가로 보내려는 모양이었다. 아빠가 아직 살아있을까?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바다가 정말 나를 돕기로 다짐했다면 분명 아빠를 돌려줄 것이었다. 바다는 기쁨의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고, 나는 그대로 기절하고 말았다. 기절해 있는 와중에도 바다가 내게 건네는 말이 간간이 들려왔다. 사람들이 네 아빠를 배에서 꺼냈어.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할 수 없었지만 나는 그 말에 안심한 채 눈을 감았다. 바다의 기분 좋은 노랫소리가 빗소리와 파도 소리 사이로 멀어져갔다. 도현정(컴퓨터과학과) 졸업을 앞두고 마음이 심란하던 중 이렇게 입선이란 결과를 받으니 기쁩니다. 어릴 때부터 바다 가까이 살며 해상 사고 소식을 자주 접했고 그런 제게 바다는 아름답지만 무서운 곳이었습니다. 지금도 바람이 센 날 파도를 보면 깜짝깜짝 놀라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바다가 점점 좋아지기 시작해서 바다에 대해 어설프게나마 써보고 싶었어요.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설 심사평]
강옥희 교수(국어교육과) 올해 학술상 소설부문에 응모한 작품은 총 7편이었다. 작년보다는 저조한 결과를 보면서 글보다는 영상을 소비하고 생산하는데 많은 시간을 들이는 세대에게 글을 쓰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러한 이유인지 올해는 응모한 작품의 수도 적고 응모작의 상당수가 서사적인 골격을 갖추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그중 최종적으로 선자의 손에 들어온 작품은 윤지예의 「미래로부터」(글로벌지역학부)와 도현정의 「바다가 부른다」(컴퓨터과학과)였다. 윤지예의 「미래로부터」는 어릴 적 바닷가마을 횟집 수조에 갇힌 물고기를 바다에 놓아주며 동정과 체념을 배운 한아가 인어 미래와 만나면서 벌어진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은 인간에게 장기이식을 위해 만들어진 미래라 불리는 인어와 한아와의 우정을 통해 과학기술과 윤리적 삶, 감정의 문제들을 소설적 서사로 잘 풀어내고 있다. 그러나 장기이식을 위한 인어의 설정이나 인어 미래의 장기 이식 과정의 이야기는 흥미롭지만 노벨상 수상자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마를 보는 듯한 기시감을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만들어낸 솜씨와 문제의식을 높이 사 가작에 선한다. 도현정의 「바다를 부른다」는 바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주인공과 바다 사이에 얽힌 에피소드를 서술하고 있으나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비교적 매끄럽게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어 격려의 의미로 입선에 선한다.
[시 가작] 주인공
<주인공> 옷깃만 스쳐도 설레고 분홍색 하늘이 비추고 눈이 마주치면 시간이 멈춘 것 같다는 이 뻔한 시들 그 뻔한 소설들 똑같은 사랑 노래들 그런 뻔한 것들을 찾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뻔한 그 말들이 내 마음을 두드리는 순간 모두가 보게 되는 뻔한 말이 아니라 나만의 이야기가 시작되기 때문이 아닐까 안병선(휴먼지능정보공학과) sns를 보다가 달달한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글의 댓글 중에 ‘내가 옛날엔 이런 말을 어떻게 하고 다녔지’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각자의 상황에 따라 오글거리기도, 로멘틱하기도 한 말들이 있는데 제 시도 어떻게 보면 되게 오글거리고 흔한 말이지만 언젠가 사랑에 빠진다면 한번쯤 생각이 나게 되는 시가 되면 좋겠습니다. 공대생이지만 가끔은 문학도가 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시 입선작] 편의점
<편의점 > 저녁에 술 한 병 사가는 손님 얼마 있다가 다시 와서 술과 안주를 사가는 아까 본 손님 다음 날 아침 박카스 한 병을 사가는 어제 본 손님 향긋한 날 하루를 시작하는 곳도 고된 날 하루를 정리하기 위해 들리는 그곳, 편의점 변예진(경제금융학부) ‘편의점’이라는 시는 제가 아르바이트하면서 자주 뵙던 한 단골손님을 시상으로 적은 시입니다. 편의점이라는 공간에서 짧은 시간이지만 손님이 구매하는 물건을 보고 느낀 점을 담백하게 시 속에 녹여 내보려고 했습니다. 상상만 하던 시 짓기를 이번에 처음 도전하게 되어 고뇌하던 순간 자체가 뜻깊은 경험이었는데 입선이라는 결과까지 얻게 되어 놀라기도 하고 감사했습니다. 많이 부족하지만 앞으로 더욱 발전하라는 의미로 생각하고 앞으로도 다양한 글짓기에 도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시 심사평]
최미숙 교수(국어교육과) 인터넷에 읽을거리, 볼거리가 차고 넘치는 시대에 시를 쓰고 읽는다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사람들과의 부대낌을 멀리하고, 만나서 나누는 대화조차 꺼려하는 이 유례 없는 코로나 시대에 시 쓰기란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항상 그러했듯 우리가 시를 쓰고 읽는 이유는 분명하다. 시를 쓰는 순간만큼은 자신의 내면 나아가 세계 속에 내던져진 자신과 가장 정직하게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새삼스러움을 올해 응모작들이 보여주고 있었다. 올해 응모작들은 크고 무거운 주제보다 우리들 생활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삶의 감각에 집중하고 있었다. 작년 응모작들은 코로나가 가져온 우리 삶의 급격한 변화에 집중하는 시적 경향을 보여주었는데, 올해는 우리의 일상적 삶을 다양한 측면에서 응시하는 작품 경향을 보여주었다. 시적 경향은 다양해졌으나, 심사 과정은 아쉬움의 연속이었다. 시적 발상은 좋았으나 시상의 전개나 마무리 측면에서 안타까움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많았다. 하지만 시적 발상만큼은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으니 앞으로 멋진 시 창작을 기대해도 될 것이다. 올해는 가작과 입선만을 선정했다. 두 작품 모두 일상 삶에서 느끼는 진솔한 서정을 담고 있다. 문득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순간을 예리하게 포착하여 시로 녹여 낸 작품들이다. 가작으로 「주인공」을 선정했다. “뻔한 시들”, “뻔한 소설들”, “똑같은 사랑 노래들”도 “내 마음을 두드리는 순간” 그것은 어느 것 하나 뻔하지 않은 “나만의 이야기”가 된다. “뻔한” 것들이 나의 것이 되는 순간 그것은 “나만의” 특별한 것이 되는 것이다. 유구한 역사 속에서 사람들이 그 뻔한 시, 소설, 사랑 노래와 지속적으로 함께 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을 것이다. 입선작 「편의점」을 읽노라면, 어두운 밤에도 불을 켜고 항상 우리를 반겨주는 동네 편의점이 떠오른다. 시의 화자에게 편의점은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사람들이 함께 하는 곳이다. 고된 일을 마치고 저녁에 “술 한 병”을 사가고, “다시 와서 술과 안주”를 사가고, “다음 날 아침 / 박카스 한 병을 사가는” 그 “손님”은 바로 우리 모두의 모습일 것이다. 덤덤한 듯 편의점을 바라보고 있는 듯하지만, “손님”을 바라보는 화자의 시선에서 따뜻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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